나의 개똥철학

대화예절(말 잘하는 것이란...)

금빛오오라 2008. 9. 26. 15:00

2004. 12. 29. 작성.

 

우리는 매일 주위 사람과 대화를 주고 받는다.
가족이던 이웃이던 친구던...
대화없이 상대의 뜻을 알기엔 매우 어려우니 이것으로써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알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대화는 의사표현의 수단으로서도 큰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텔레파시로 의사전달이 명확히 된다면 더 말할것도 없겠지만...

대화로서 상대의 의식수준과 사고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대화내용도 중요하지만 대화예절에서부터 이미 그러함은 드러난다.
그러하니 대화를 오래하지 않아도 상대의 대화수준이나 의식수준을 짐작할 수 있으며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말 잘한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무엇이 말을 잘 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흔히 사용하는 표현중 '저사람 운전 잘 한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것역시 제대로 짚어봐야하는 것인데 우리는 보통 운전을 요리조리 잘 빠지고 세치기 잘하며 과속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 이 표현을 잘 사용한다.
운전자는 카레이서가 아니다.
정말로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은 신호 잘 지키고 안전운전하며 남을 배려하여 방어운전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운전자의 매너란...'  참고)

자신이 일일이 깜빡이 키는 것이 불편하니 생략하거나 내가 가니 모두 비켜라~ 하며 경적을 난발하는 어이없이 의식. 마주오는 차에 양보하지 않으며 너도 나도 끼어들기와 험하게 운전을 하는 습관들...
정말로 운전을 잘 하는 사람 옆좌석에 함께타고가면 대다수가 답답해 할 것이다.
그러나 운전을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하며 그 표현의 사용에 있어서도 난발해서는 안된다.

'말 잘 한다'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말을 많이하며 줄줄~ 늘어놓는 사람에게 우리는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진정 말솜씨있는 사람은 그것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며 경청하는 자세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경청하는 자세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은 대화가 오래 지속될수록 대화의 주도권을 가지게되고 말한마디 한마디에 설득력이 붙게되는 것이다.
상대의 대화중 끼어들기를 좋아하거나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자꾸만 알리고자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말을 참으로 못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함의 연속은 결국 메아리되어 되돌아와 나의 대화중 그들이 끼어들며 나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을 것이니 당연히 의사전달이나 설득력은 떨어지게 된다.

말을 잘 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남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어질어야한다. 어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하니 말을 잘 하고자한다면 먼저 인성부터 발라야 하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들어줘야한다. 왜냐하면 대다수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위해 한마디의 말이라도 더 하고자하므로...
들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고 말하려고 덤비는 사람은 수두룩하니...
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대화를 주도해선 안된다. 이것은 말이 많은 것이지 말 잘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동일시하는 오류는 없어야 한다.

때론,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을 하기도 해야한다.
물론 이것은 상대방을 떠보기 식의 자세가 아닌 배려하는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나의 개똥철학에서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참고)
상대가 나에게 말 하고자하는 것이 내가 알고있는 것이라해도 처음 듣는 것처럼해주면 더 재미나게 신이나서 말을 하게된다.
물론 절대적이진 않지만 상대가 나에게 말 하는중에 내가 잘몰라~ 몰라~ 를 자주 말하게되면 대화가 끊어지니 몰라도 아는 척 해줘야할 때도 간혹 있다.
이러함 역시 대화자의 마음가짐(어짐)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남을 배려하며 들어주는 어진마음과 함께 능수능란한 말솜씨가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두번째이지 첫번째가 아니다. 또한 이것은 대개가 말장난이지 말솜씨가 아니다.
대개 말이 많은 사람은 알차지 못하다. 진정 능수능란한 말솜씨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평소에 항상 드러내지도 않는다.

사람뿐 아니라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말이 많은 지역(나라)일수록 합리적인 반면 인간미가 떨어진다. 왜냐하면 말로서 그 부분을 때워버리기 때문이며 이러함의 지속은 정신문화와 의식의 퇴보를 가져와 점점 인간의 원래 성(性)과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공자님께서 '말은 언울하게,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 라고 하셨는데 그 말뜻을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본다.

공자님께서 '발라 맞추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도에는 '仁(인)'이 적다'고 하셨다.
巧言令色(교언영색)이라하여 '말재주가 교묘하고 표정을 보기좋게 꾸미는 사람중에 어진 사람은 거의 없다.' 라고 하셨는데 안된말이지만 이런 사람들은 TV홈쇼핑등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능을 발휘하여 그 나름대로의 재능은 인정받을 지 몰라도 본인은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剛毅木訥 近仁(강의목눌 근인)이라하여 '의지가 굳고 용기가 있으며 말수가 적은 사람은 仁(덕을 갖춘자)에 가깝다'고 하셨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하여 文質彬彬 然後君子(문질빈빈 연후군자)라 하여 '文과 質이 잘 어울려 조화를 이뤄야 비로소 군자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말에 그 책임을 지며 실천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군자가 될 순 없다. 그러나, 공자님께서 그러한 말씀을 하신 뜻을 깊이 세겨볼 필요가 있다.

말수가 많은 사람에게 '말을 잘한다.' 말수가 적은 사람에게 '말을 못한다.'의 표현은 옳바른 표현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부모자식간에도 애들이 말을 많이하는 것을 부모는 잘 들어줘야하며 잘 응해줄 필요가 있다. 무엇이 말을 잘 하는 것인지 알고 있다면 말이다. 그럼 그 자식은 그것을 배워 말을 잘하는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말을 잘 하고자 한다면 기본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에서부터 출발하여 잘 들어줘야하는 것이며, 웃사람과 아랫사람과의 대화에서는 친밀감의 정도에 따라 경어사용이 무시되어도 별 상관없다. 그러나, 경어를 사용치 않음으로해서 상대를 무시하게되는 어리석은 자에게는 이러함이 적용되지 않는다. 바른 말이 그 마음가짐을 다져주기도 하므로...
경어를 사용해야하는 관계에서 경어를 사용하지 않을땐 그만큼 상대를 잘 배려하고 인정해주는 것이 마음속에 담겨져 있어야만 한다.

아무리 좋은 말이나 좋은 뜻이라도 본인의 깊은 사고와 의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자신에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 된다. 진정 말을 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배려하는 마음, 어질고 너그러운 마음자세를 갖춰야 비로소 말을 잘 할 수 있는 것이며 대화에선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또한 이것이 결국 나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 된다.

거의 모든 사람이 말을 잘 하고자함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