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

벨트공장을 털어라

금빛오오라 2008. 9. 26. 17:29

2004. 9. 27. 작성.

 

안동초등학교 5학년.
초겨울 어느 날, 반 친구가 벨트공장에 벨트훔치러 가자고 해서 같이 갔지.
훔치는 게 익숙치 않아 자신 없었지만 우리들 세계에서 벨트는 아주 귀한 것이었으니...
팽이돌릴 때 벨트가 최고거든...

그 친구는 벨트공장 바로 옆에 살았고 그곳까진 꽤 멀었어.
걸어서 30분은 가야 했으니... 나로서는 큰 마음먹고 간 셈이었지.
지금도 역시 걸어서 가기엔 참 먼 거리야.

그 친구 집에서 밥을 같이 먹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허네~
그 친구 집이 아직도 기억이 나. 꽤 꼬질꼬질하고 지저분했었는데..^^ 벨트공장 옆쪽 담과 그 친구집 사이엔 좁은 골목이 있었어.
벨트훔치기에 노련했던 그 친구는 나에게 수시로 노하우를 전수해 줬지.
똘마니들에게 항상 표적이 되었던 그 벨트공장은 나와 그 친구 말고 다른 몇명의 학생들도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어.
모두 좁은 골목 높은 담에 점프해서 고개만 달랑 걸어놓은 채 매달려 동태를 파악하면서 몇번이고 때를 기다렸는데...

'이때다' 하면서 담을 넘어가자고 했어.
그래서 같이 넘어 뛰어 들어갔지. 뭐 매일 밤10시까지 뛰놀고 운동회 달리기1등 하고했으니 자신이 있었지...
담을 넘어 쌓아놓은 벨트들을 밟고 내려서 짜투리 벨트를 하나 집었어. 뭐 좋은 것 나쁜 것 가릴 겨를도 없이 손에 걸리는 연녹색벨트를 집었는데...

후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서너명이 도망을 가기 시작했어.
그래서, 나도 잽싸게 달리고 담을 넘으려고 벨트뭉치를 발로 밟는 그 순간...
아~~ 뒤에서 뭔가 나를 잡는 것이 아닌가... 아! 하늘이 무너지는구나.ㅜ.ㅜ
생활의 일과였던 그 애들과는 달리 초짜인 나는 분위기 파악이 늦을 수 밖에 없었어.
회사직원에게 잡혀 경비실로 끌려갔는데, 거기엔 직책이 좀 더 높은 사람이 앉아있었지.
그 분의 명령에 난 바닥에 무릎끓고 두손을 들고 있었지.

장부를 꺼내면서 학교 학년 번호 이름을 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학교에 알린다고 하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그래서 북받히는 설움에 대성통곡을 하며 다 불었지. 거짓말은 못하는 성미이니 모두 정확히 또박또박 불러줬어.^^ 안동초등학교 5학년3반 18번 ***. ^^
그 장부에서 이미 많은 전과자들의 명단도 볼 수 있었고.^^

그런데 '같이 훔친 친구들까지도 모두 불어~' 하면서 아주 집요하고 반복적으로 나에게 캐물었지.
나도 '걔들은 모르는 애들이고 저 혼자 왔는데요.' 를 울먹이며 반복했고 끝까지 입을 다물었어.

결국엔 그 사람의 노력은 헛되고^^ 포기를 하더구만...
엄청 울어댔던 내게 울음을 달래려했는지 막대사탕을 주는 게 아닌가. 그래도 사탕이 좋긴 좋아서 받아 물었지.^^
바닥에 무릎꿇고 두손들며 입에 막대사탕을 물고 우는 모습~ ^.^m

손을 내리고 의자에 앉으라해서 의자에 앉아 있었어.
내가 훔친 벫트를 돌려 주면서 다시는 이러면 안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다른 애들 신상을 불지 않은 것이 대견스러워서 그러셨는지도 모르지.
아직도 기억나는 한마디가 있지.
'이놈 끝까지 안부네~'

그때 마침 직원이 들어와서 이 벨트는 애들에겐 필요없는 것이라면서 잠시 갔다 오더니 다른 벨트를 들고왔지. 이 직원은 들락날락 거리며 날보곤 왜 그렇게 웃어댔는지. 그땐 나는 영문을 몰랐어.^^

애들은 이 벨트를 좋아한다고 하며 이것을 주라 했어.
직원에게 벨트를 받은 그 분이 내게 훔친벨트와 가져온 벨트 모두를 주시는 것이 아닌가.^^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약속하며 나는 그곳을 나왔어.

받은 벨트는 풀면 질긴 실에 검은 고무가 군데군데 붙어있어 겨울에 팽이돌리기엔 최고였거든.
또 우리들세계에선 이것을 황금송아지처럼 대우해줬고, 이것을 갖고 있다면 다른 애들에게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었지.^^ 그것도 몇덩이나 되었으니 오죽했겠는가. ^^

다음날 학교에 가는 것조차 두려웠고 수업시간 선생님 눈치만 봤는데, 5학년마칠때까지 조마조마했었어.^^ 아~~ 마음편히 학교 다니고 싶다.
결과적으론 사탕도 먹고, 좋은 벨트도 듬뿍 얻어왔고..^^

그 이후... 역시나 그곳 담주변에선 벨트를 훔치려는 애들의 머리가 여전히 불쑥불쑥~
생선가계 생선을 노리는 야옹이들 덕분에 직원들은 항상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있지.
반면에 언제나 그 벨트공장 정문쪽엔 담을 등지며 따스한 햇볕을 안고 앉아, 훔친 벨트를 한가롭게 풀며 동그랗게 말고 있는 애들을 볼 수 있지.^^

또 그것을 부러워하며 뚫어지게 바라보던 또다른 꼬맹이들의 눈초리...^^

배고픈 야옹이들~~ 야옹~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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