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똥철학

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

금빛오오라 2008. 9. 26. 17:58

2007. 8. 16. 작성.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선하게 태어났다고 하는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 인간의 타고난 성품은 악하다고 하는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

다수의 사람은 이 두 사상에 대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어느 편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 둘 중 하나를 꼭 선택해야만 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중심을 바로 잡아야지' 참고)

그러나 그 둘중 하나를 꼭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언쟁이나 다툼이 있을 경우 '대화로 풀어야지'라는 말을 자주 하고들 한다.
어떤 오해로 인한 것이라면 대화로 오해를 풀어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생각이 서로 다른데 어찌 대화가 능사이겠는가.
그 마음에서부터 출발하여 생각이 같아야만 그것은 대화로 풀어질 것이다.

어느 선원 둘이 다투어 화해를 하려고 둘만의 자리를 마련했는데 오히려 더 감정히 격해 살인사건이 일어난 일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이런 예는 적지 않다.

TV토론프로그램을 보면 거의 모두가 5:5의 대립을 처음부터 만들어 싸움을 시키고 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 나오기보단 서로의 골이 더 깊어지기만 하는 것이다.
아주 사소로운 문제까지도 더 크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느 하나의 동일한 목표와 사상에서 구체적인 수단과 방법을 도출해 낼 때는 서로 양분하여 하나의 답을 얻는 것이 가능할 지 몰라도 현재의 TV토론프로그램 방식에서 좋은 답을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오히려 싸움을 유발하게 된다. 대신 흥미거리로 만들어 시청률을 높이고자 한다면 그것이 부합된다고 볼 수 있다.

또 대개가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여 우기는 것이며 객관성이 결여된 가치없는 논쟁에 불과하며 시작도 논쟁이요~ 마지막도 논쟁이 되는 것이니 오히려 처음보다 서로간의 거리가 멀어질 경우가 많다.

이런 양분론적인 사고는 전통적 동양사상과는 거리가 있다.
서양에선 일반적인데 무엇이던지 맞서는 것으로만 이해를 하고 있는 근본 사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동양에선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선한 것'과 '선하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기를 좋아했다.
서양에선 '선과 악',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 '좋은 것과 나쁜 것',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흑과 백', '천당과 지옥', '천사와 마귀' '선악과' 이런 식으로 양분화하여 자신의 편을 만들며 세력형성하기를 좋아했다.
동양에선 둘로 명확히 나누기를 꺼려했지만 이미 하나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니 그것또한 옳은 구분이라 하기 어렵다.
좋은 답을 얻기 위해선 양분화가 때론 필요하지만 동양사고의 근본은 그것이 아니란 것이다.

아무튼 현재 물질문명의 발달로 이런 서양사상이 지배를 하고 있으며 우리는 알게모르게 그들의 사상에 젖어 들어있다.
그래서, 가리지 않아도 될 것까지 옳고 그름을 꼭 가리려하고...
가리려 할 땐 그 하나를 고집하려 든다.

사람의 性에 대한 것도 다르지 않다.
"당신은 성선설이 맞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성악설이 맞다고 생각합니까?"
이런 질문에서부터 오류가 시작된 것이다.

인간은 선도 악도 아닌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선이라는 것과 악이라는 기준또한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태초에 분화되기 전 무극상태는 '양' 도 아니고 '음' 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즉, 비어있는 것으로 채워진 상태이다.
(공기(空氣)를 예로 들어보면, 공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꽉 채워져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생명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성장하기도 한다.)
이미 이 둘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물론, 이 둘중 하나를 미리 가지고 있었다 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것을 억지로 인간의 性에 대입해야만하는 책임은 없다. 그러나 그것을 참고할 만 하다.

인간이 善을 행함으로서 惡(혹은 不善)이 드러난 것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고..
인간이 惡(혹은 不善)을 행함으로서 善이 드러나게 된 것이라 하는 이도 있다.
후자가 대개들 알고 있는 것이며 보편적이다.
그러나, 선과 악이라고 하는 것은 동시에 나뉘어지는 것이지 어느 하나가 먼저라 생각치 않는다.

'性'이라고 하는 글자를 분석해보면 마음 심(心)변에 날 생(生)자이다.
이것은 타고 나는 그 무엇(마음)이 있다라고 이해를 해야함이 옳다.
그것(마음)의 선하고 악함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니라 본다.

인간의 性을 동물의 性과 구분할 수 있는 한자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성무선악설을 주장한 '고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도 악도 아닌 것이라 했다.
게중엔 가장 인리가 있다고 봐지지만, 인간의 性을 동물의 性과 같다고 하는 면은 인정하기가 어렵다.

인간의 性을 선과 악의 문제로 국한시켜서는 안된다. 훨씬 더 많은 어떤 것들이 있다고 보며 선과 악을 구분짓는 시점을 태어난 때로 미리 규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 인간의 性을 동물의 性과 동일시해서도 안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분이 명확치 않은 경우도 많고...
그것을 구분하지 않아도 될 것을 자신의 잣대로 억지로 구분하려 애쓰고들 있다만...
짧게 정리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인간은 동물의 性과 구별되는 선도 악도 아닌 비워있는 것으로 채워진 性을 타고나는 것이며 선과 악은 서서히 동시에 분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