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똥철학

종교는 권력쟁취를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번성해 왔다.

금빛오오라 2008. 9. 26. 17:52

2007. 6. 13. 작성.

 

수천년전 모든 곳에서 제사장이 나라를 통치하였다. (현재도 원시적인 곳에선 제사장이 부족장을 하고 있다.)
그때는 제사장이 막강한 파워가 있었고 그가 곧 왕이었으며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왜 제사장이 막강한 파워를 가질 수 있었는지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을 할 것이다.

중세로 넘어오면서 제사장과 왕의 권력다툼이 시작되었고 이 싸움에서 왕이 이겨 지금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왕이 어떻게 해서 제사장을 누르고 권력장악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과는 달리 백성들은 신앙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던 터라 왕은 이들을 세뇌시켜 정신적으로 지배하여 제압할 수 있는 종교가 필요했다.

정통성없는 권력이 그것을 가짐으로서 정권의 정당성을 얻어 권력장악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쿠테타를 인정해주는 종교가 필요했던 것이다.
어느 신흥종교는 권력자에게 자신의 교를 믿게 함으로 해서 종교적으로 번성하기를 원했다.

4세기초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예수교는 위와 같이 서로의 이익이 맞아 손을 잡았고, 반대세력을 모두 처단하고 정권을 장악하여 왕권, 신권을 강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왕권에 대한 도전은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을 덮어씌워 무자비한 학살과 타국점령에 이용해 왔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학살을 한 것이 바로 천주교/기독교란 종교이다.
얼마 후 사상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신약성서란 것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때가 콘스탄티누스 죽기 몇년 전이며 예수가 죽고 300년이나 지난 해이다.

12월 25일이 예수의 생일이라고 하여 크리스마스라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로마에서 미트라와 다른 여러 신들의 생일로 내려오던 것을 5세기경에 급기야 예수의 생일로 바꾼 것이다.

이렇게 이 종교는 시작때부터 탐욕한 권력가가 개입하여 권력쟁취와 강화에 사용했으니 성경의 신빙성조차 의심스럽다.
신성화하기에 불리한 것은 빼고 조작하기 급급했지 않나 싶다.
기존의 복음내용도 서로 다른 것들이 많다.

19세기말 예수가 인도의 불법을 배워갔다는 자료를 러시아인이 공개한 적도 있고, 최근 미국에서 방송된 것도 인도에서 불법을 배워갔다는 것의 내용 등인데 예수의 청년기시절(10년이상)의 행적은 성서엔 전혀 언급이 없다.

예수가 결혼했다는 것도 그들은 인정치 않으려 애쓴다.('예수는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참고)

허구와 사실이 아닌 것을 수정하는 노력은 기독교 내에서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만 그들 자체가 이미 세뇌되어 있는데 얼마나 바로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 불교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배경을 한 번 볼까.
신라시대 법흥왕시기에 절대왕권은 없었다. 그 권력이 어느 정도였나 하면 귀족의 허락 없이는 왕이라 해도 절하나 조차도 맘대로 짓지 못하는 정도였다. 왕권은 부족장들의 권력을 넘지 못했던 때였다.

5세기중엽 신라는 북위(지금의 북중국)에서 고구려를 거쳐 불교를 전해받게 되는데, 북위에선 '왕즉불(王則佛)'이라하여 왕은 곧 부처라는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다. 북위의 왕(황제)도 이미 불교를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인도에서 가져왔던 것이다.
어찌나 한심한가하면 왕의 얼굴형상을 하고 키도 같게 만든 상을 부처상이라 했던 것이다. 우매한 백성들은 절을 할 수록 신심과 왕에 대한 경외심은 더 커지기만 한다.

당시 전통적 천신신앙이 뿌리깊게 박혀있던 신라는 법흥왕이 이것을 허물지 못하면 자신의 권력장악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불교를 받아들이려 했다.
법흥왕은 이차돈과 짜고 천신신앙의 일곱성지중 하나인 천경림에 절을 짓기 시작했다.
이차돈이 왕의 명으로 절을 짓는다고 하자, 6부를 대표하는 귀족들이 왕에게 따지러 갔다.

그러나 왕은 그런 명을 내린 적 없다고 시치미를 떼고 이차돈을 불러 목을 베어 처형했다.
(법흥왕이 이차돈을 이용해 먹었다는 설도 있고, 이차돈이 희생을 자청하였다는 설도 있지만 여러 자료와 정황으로 보아 후자가 정확하다고 보는 것이 다수이다.)
더불어 6부 귀족들에겐 왕을 모독한 혐의의 누명을 덮어씌울 수 있었으며 이렇게 해서 귀족들은 왕의 권세에 눌릴 수밖에 없었다.
절(흥륜사-興輪寺)은 완성되었고 이때부터 불교는 급속히 번성하게 되었으며 법흥왕은 한층 강화된 왕권을 누릴 수 있었다.

콘스탄티누스와 법흥왕의 공통점은 권력을 위해 새로운 종교를 수단화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권력가는 왕권을 신권화하여 자신의 야욕을 이룰 수 있었고, 종교는 쿠테타세력이나 정당하지 못한 정권탈취자에게 정치적 정당성을 제공해주어 크게 번성하게 된 것이다.

왕권을 신권화한 것은 우리의 전통적 효사상을 충사상과 연결하여 우매한 백성 위에 군림하고자 했던 것과 흡사하다. '군사부일체'란 말은 권력에 눈이 어두운 자들이 만들어 낸 수준 낮은 유치한 단어이다.
우리나라의 '국기에 대한 맹세'에 충성이나 의무란 단어가 들어가면 안 된다. 독재시절에 세뇌용으로 써먹던 것을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으니...
(이에 대해선 행정차지부에 의견을 올린 바 있다.)

북의 김정일이가 김일성에 이어 독재를 하고 있는데 그것 또한 신을 억지로 연결시켜 신격화세뇌작업을 했기에 우매한 백성들에게 먹힌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악법도 법이다'도 마찬가지이다.('악법도 법이다?' 참고) 이런 많은 것들에 현혹되지 말아라.

권력을 위해 종교를 수단화했던 것, 또는 종교의 번성을 위해 정당치 못한 권력을 인정해주며 손잡았던 것들에 대해 백보양보해서 모두 덮어두더라도 현재를 보면 안타까움이 많다.
심각히 걱정되는 것은 영적 수준이 낮고 나쁜 짓까지 골라서하는 기독교가 가장 한심하다.

그들 내부에서도 파티마의 제3의 예언으로 성모 마리아가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이나 개선하기는커녕 그것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미화하기까지 하니..
그 대가는 충분히 받을 것이니라.

현대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성과는 거리가 멀어지니 종교의 중요성은 커져간다.('외모지상주의와 약육강식사회에 대한 비판' 참고)
중요한 것은 기존의 종교이던 새로운 종교이던 자신의 수준에 맞게 그것을 찾아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것들이 난무한데 그 중에 진짜를 찾고자 애쓴다면 자신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것은 누가 대신 해주는 것도 아니며 대신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깊이 생각치 않는 사람은 그 수준이 높아지지 않고 머물게 되며 점점 우기다보면 퇴보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은 그것이 발전인 줄로만 안다.
바른 마음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진리란 무엇인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