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똥철학

[기도하는 법]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지는가?

금빛오오라 2008. 9. 26. 17:57

2007. 7. 14. 작성.

 

기도하는 것에 대해 질문이 와서 한말씀 올리겠습니다.
제가 글을 적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대해 생각도 하고 고심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이런 것에 관한 질문이 와서 글을 적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의 작용으로서 질문을 하려는 분과 기운이 자연적으로 일치되어 연결이 된 것이라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바라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 그 자체, 또는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이나 행동양식까지 포함하는 것이며, 자신 속에서 신의 마음을 끄집어 내는 과정입니다.
마음을 먹는 그것만해도 넓은 의미의 기도라 할 수 있으며, 구체적인 행동이 가미됨으로해서 더 강한 에너지의 작용을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는 기도시에 초를 켜야 한다. 향을 피워야 한다. 물을 떠놓고 해야 한다지만 그런 것은 필요없습니다. 장소도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일심으로 기도하기 어렵다면 사람들이 많이 기도하는 장소에서 하셔도 좋겠습니다.
학생시절때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이 도움될 때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튼 깊은 사고와 명상에 빠질 수 있는 조용한 곳이 좋겠습니다. 산자락에 터를 잡고 기도를 하시는 분들이나 절 같은 것이 현실의 세계에서 도피하고자하는 심리라기보단 깊은 사고의 세계, 명상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는 좀 더 유리한 환경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도하는 마음자세와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기도의 기본이자 전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날 유명한 기도터에 가봤습니다.
앉아서 기도를 하게끔 맨바닥에 얇은 방석(자리)같은 것을 두장 겹쳐 놓아놨던데 어느 아주머니께서 좌정하여 참선하고 있는 옆사람 팔을 치며 바로 앞으로 오시더니 쓰고 있던 모자를 툭 던지고 자리를 발로 두번 툭툭 찬 후엔 정성껏 두손모아 고개를 숙이며 절을 하더군요.
자리가 두장 겹쳐져 있는 것인데 정확히 겹쳐져 있지 않아서 발로 찬 것으로 보여졌습니다.

이 분은 죄송하지만 평생 기도해도 효과가 없겠습니다.
행위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이 분은 기도란 것을 절만 많이 하면 되는 것으로 맹신하는 분이십니다. 기도를 하기는 싫고 절은 해야 되겠고 하는 심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기도의 대상을 아주 우습게 보는 그런 마음, 불쾌한 마음가짐 등 이런 것으로 기도하는 것은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며 소원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고자하는 마음은 그냥 생기지는 않겠지요.
기도를 하고자하는 마음이 자발적으로 생기신 분은 갈구하고자하는 것이 아주 강렬하다거나 자연의 마음과 일치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움직임의 시작이며, 순수한 인간의 마음이 요동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도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수준높은 한 인간이 될 순 없습니다. 자신이 갈구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욕망과 함께 깊은 사고와 명상,참선 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럼, 기도의 대상은 무엇인가?
기도하는 것에 대한 대상은 자연 그 자체가 될 수도 있고, 산신도 될 수 있고,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지도자(성인)가 될 수 있겠고, 자신의 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기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형상이나 조형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하는 예수상이나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 신은 없습니다.

인간계와 신계를 연결하는 중간자를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처음에는 쉬울 듯 싶습니다.
이후엔 그것의 수준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 다음 대상은 신이 될 수 있겠고..
결국엔 자기 자신이 기도의 대상이 됨을 인식하게끔 됩니다.

대다수의 분들이 기도라하면 개인의 구복을 바라는데, 오랫동안 하신 분이라면 좀 더 큰 안목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기도에서 발전하게 되면 다수가 안고 있는 문제, 또는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 즉 자신을 성찰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도를 많이 하게 됩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수준을 높여줄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그릇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신 스스로만이 가능하며 그런면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을 불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소승불교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론 우리나라의 대승불교보단 인도의 소승불교적인 것이 수준이 더 높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원래에 더 가깝다고 봐 집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대승적으로 발전했다고 하는데 발전이라기보단 변화가 더 맞겠습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음모에 의해서 별질 된 면도 있습니다.('종교는 권력쟁취를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번성해왔다.' 참고)

아무튼 구복을 바라는 기도를 중심으로 글을 적겠습니다만 바른 기도법은 자신을 성찰하며 그릇을 키워가는 기도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럼, 기도의 실현과정은 어떻게 되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바가 있습니다. 대개 이것을 제3의 어떤 존재가 도움을 줘서 나의 소원이 이뤄진다는 마음을 갖고 기도를 하십니다.

신은 인간사에 간섭하지 않습니다.('무속과 신의 실체'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참고)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죽어간다해도 신은 살리려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 사람을 수백만명 죽인다해도 신은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든 종교에서 기도의 대상을 신이라 하니 오류가 발생합니다.
물론, 그들은 신이 항상 자신을 돌봐 줄 것이라고 하는 착각에 빠져 있지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임마누엘'이란 것은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인데 하나님이 항상 나를 돌봐주는 것으로 멋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원래는 그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속에 신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양과 동양의 철학적 사고의 차이인데 그 수준이 비교가 됩니다.
아래에서 말하는 '인간은 소우주'라는 것이지요.

신은 인간사에 관여를 하지 않는데 기도하는 대상이 신이라는 것이 오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결국엔 자신에게 기도를 하게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내 마음속에도 신이 있으니깐요.

아무튼 경외할만한 존재인 신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기도에 도움이 됩니다.
내가 신을 경외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기도에 심취하기가 수월하며 내가 바라는 그 마음의 믿음과 파장은 깊고 커질 수가 있습니다.
이 파장이 전 우주에 전달되어 자연의 파장과 일치할 때 비로소 그 소원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물론, 일치되기 이전 과정에서부터 서서히 이뤄져가기 시작합니다.

신이 아니라 영에 대한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조상은 신이 아닙니다. 영입니다.
이런 조상분들은 후손의 소원을 들어주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으로 후손을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후손에게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사실은 대개가 힘없고 불쌍한 존재이지요.
그런 부류는 살아있는 인간의 기운작용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약하며, 그것에 비해 육과 혼을 함께 갖고 있는 나의 존재는 아주 큰 기운을 유도할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깊은 파장(파동)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때 기도란 것이 매우 큰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든 결과물입니다. 미래의 나는 현재 내가 만든 결과물이 되어 줍니다.
나 자신은 그것을 끌어들이는 자석이며 그것은 나의 생각에 의해 실현되어 집니다.
석가께서 하신 말씀을 잠시 인용하겠습니다.

"현재의 나는 내 생각의 소산이다."

나의 삶에 나타나는 모든 것들이 나 자신의 생각에 의해 유도되고 만들어진 산물입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끌어 들이고 있는지 깊은 사고가 필요합니다.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아주 유명한 스님이 계십니다.
이 스님의 말씀으론 100일기도를 하면 어떤 소원이라도 이뤄진다 합니다.
아주 유명하신 분이신 것으로 알고 있으며 실제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원을 이뤘다고 하며 도력이 높으신 분으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비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각자의 소원은 스님이 들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신이 들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조상이 들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 자신 마음속의 아주 강렬한 욕구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자극됨으로해서 각인되어 그 파장이 우주를 진동하여 자연적으로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발현-실현과정입니다.

물론, 그 스님을 우습게보거나 수준 낮은 분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기도로 자신 스스로 소원을 이루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대다수가 그것(자신의 기도)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고 나약하여 어딘가 신통력이 있는 분을 찾아가게 되거나 종교를 믿어 성인분에 대한 신심을 가져 의지하게 됩니다.
자신이 기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무슨 놈의 소원성취가 되겠습니까.

자신 스스로에 대한 의지나 믿음이 부족하다면 이런 신통력이 있다는 분을 믿는 것이 도움은 됩니다만 역시 기도와 소원성취의 주체는 나 자신입니다.

그럼 기도하면 된다는데 운명론적인 사주팔자와 상반되지 않는가?
명리학은 매우 정확합니다.
사주팔자라하는 것은 여러 행성과 우주 기운의 조합으로, 태어난 때에 어떠한 기운을 많이 갖고 어떤 기운을 부족하게 가졌나 하는 분류를 한 것입니다.
내가 태어날 시점에서 자연의 어떤 조합된 기운을 받고 태어났느냐에 따라 내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이 명리학입니다.
내가 태어날 시점에서 받은 그 기운의 조합과 내가 살아갈 날의 기운들과 다시 조합하여 그 기운이 나에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예정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인데 신(자연)은 그렇게 불공평한 게임을 하게끔하는 어리석음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물론,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명리학의 적중률이 높은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유명한 무속인분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요. 타고난 자신의 운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95%라고..

명리학을 확고히 믿는 사람이 그것에 심취할수록 그 틀속에서 빠져 나오기 더 어려워지며, 자연의 기운흐름에 나 자신을 맡겨버리게 되지요.
이런 무지함과 어리석음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나 자신의 운명이 그 틀속에 있느냐 아니면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냐는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주팔자 운명론의 작용이라는 것은 자꾸만 그렇게 유도한다는 것이지 그렇게 되어야만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마음이 타고난 사주팔자와 운세의 흐름보다 더 강한 작용을 하면 운명론은 나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나의 자유의지대로 살고자하는 것의 방도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이 기도란 것에는 명상이나 참선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에 대해 반박하시는 명리학자분들도 계실겁니다만, 그런 분들은 자신의 타고난 운명대로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바라는 바는 있습니다. 소원이라 할 수도 있고, 꿈(희망)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가지고 싶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싶다~ 시험에 합격하고 싶다~ 건강해지고 싶다~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 ......

그것을 마음속으로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다해도 그것이 이뤄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루고자하거나 원하는 것을 계속 생각하고 마음속에 확실히 각인을 시켜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아주 강렬할 때 그것은 나에게 빨려 들어오게 됩니다.
그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사물이 될 수도 있고 행위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분들은 이런 방법을 몰라 오히려 더 어려움 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돈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분이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기도를 하지만 오히려 기도하면 할수록 이런 불안함과 걱정이 더 깊이 각인되어 계속 그런 기운을 자꾸만 유도하게 되어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된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어야하며 반복-지속적이어야 합니다.
기도의 대상이 절대적이며 경외의 대상일수록 나의 소원이 이뤄진다는 확실함을 갖기 수월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보면 경외의 대상을 기도대상으로 삼으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럼으로서 더 큰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경외의 대상이 나의 기도를 들어줘서 소원이 이뤄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나의 사고에 의해 미래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기도의 발현-실현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시는 분이시라면 종교는 필요없습니다. 이미 그 자신은 깊은 신앙심을 가지신 분이시니깐요. 언제 시간이 되면 종교와 신앙에 대해서도 자세히 글 적어 올리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도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 좋지 않은 기억 등을 멀리하고자 이것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게 되면 오히려 내가 원하지 않던 것이 자꾸만 내게 더 다가오게 됩니다.
원하지 않는 것을 밀어낼수록 그것의 파장은 더 강렬해지게 됩니다.

기도때 '나는 뭐도 안되고.. 뭐도 안되고.. 하는 것마다 안돼~'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셔도 되고, 이런 말도 남에게 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 파장은 점점 거세지고 나에게 다시 그런 에너지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원치않는 것을 생각할수록, 더 말할수록, 나쁘다고 말할수록 항상 그런 생각을 하게되고 그것은 더 큰 파장으로 내게 되돌아옵니다.

연예인중 자살 등 죽기 직전에 부른 노래말과 자신의 운명이 맞아 떨어진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는 강렬했다지만 정작 본인이 그 에너지를 더 강하게 만들어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돈을 끌어들이려고 한다면 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빚이 있다면 빚을 생각치 말아야 합니다. 빚을 생각하면 할 수록 빚은 더 지게 됩니다.
돈이 없다는 것에 계속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풍요로움에 집중해야 합니다.

중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 병을 생각치 말아야 합니다.
간혹 완전히 포기한 채 그것의 구속에서부터 벗어나 홀가분한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병이 치유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현대는 물질문명의 발달로 과학적인 사고가 지배하고 있어서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선 인정치않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 결국엔 이런 가치가 더 인정받게 되어 있습니다.

눈을 막고 앞을 보라하면 누가 믿겠습니까만 이것을 부정하지 않는.. 아직 때가 묻지 않는 어린 애들은 가능합니다. 이것을 활용한 것이 뇌호흡이며 TV에서 어린 애들이 나와 눈을 가리고 앞의 물체나 글을 읽는 것도 간혹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믿음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자신은 과거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니 나의 미래는 나 자신의 현재 생각과 마음이 만들면 되는겁니다. 그러니 바라고 있는 최종 결과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이미지화하여 연상해도 좋고, 구체적으로 글로 적어도 좋고, 그림을 그려도 좋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종이에 적는다거나 갖고 싶은 것을 사진으로 두고 보면서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자극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언제 이루어지느냐에 대한 것은 내가 자연과 얼마나 조화를 잘 이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에 임하는 자세는 나는 원하는 것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자석이며 그렇게 된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는 기도는 시간낭비입니다.
그 범위는 명확치 않으며 전혀 불가능한 가능성 0%의 공상은 되지 않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가능합니다.

나 자신을 스스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그러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주겠습니까. 나 자신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 파장이 우주를 진동하여 남들도 나를 인정하며 사랑하게끔 되는 기운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안돼~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아주 귀한존재이며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아끼십시요. 물론 오만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도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분명 이런 자연법을 터특한 사람이 한 말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건강하지 않다면 건강한 나의 모습을 떠올리고..
부족하다면 풍요로운 나의 모습을 떠올리고..
주변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사랑받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세요.

이런 마음을 제대로 가지셨다면 기쁘고 행복한 감정에 빠져들게 되며 반복되다보면 각인이 되게 됩니다.
그러면 우주가 나의 마음에 반응하게 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아주 자연적인 에너지에 의해서 말이지요.
이것은 신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 또한 그런 자연법에 적용받고 있는 하나의 존재에 불과합니다.

기도때 밝고 긍정적인 감정은 우주에 그대로 파동(=파장)으로 전달되어 나에게 더 좋은 것을 끌어들이도록 유도해줍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이 그 원천이며 말과 행동, 주문 등은 그것을 더 잘 각인시켜 파장을 증폭시켜주는 수단입니다.

그러하니 기도는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됩니다. 생각만으로도 되는 것이며 말이나 기타 행동은 그것에 도움을 주는 보조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생각에 전념하기 어려우니 명상,참선을 통해야 하며 믿음이 부족하니 경외의 대상을 기도의 대상으로 가져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귀찮은 것이라 여겨선 안되겠지만 하기 싫어도 의도적으로 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기도를 한 후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잘 한 기도인지 그렇지 않은 기도인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속일수가 없습니다.
기도를 잘 하신 분은 얼굴이 밝고 빛이 나며, 잘 하지 못한 분은 기운이 빠져 있고 어둡습니다.
기도때 기쁘고 좋은 감정을 느껴야 합니다.
물론 가끔은 깊은 사고를 하다보면 밝지않은 경우도 있습니다만 자주 그러하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소우주라고 합니다. 이 말엔 엄청난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말을 누가 최초로 했는지는 몰라도 자연법을 아주 심도있게 제대로 분석하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마음이 나의 삶을 만드는 창조자입니다. 나의 현재 생각과 감정-의지는 미래의 나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며 그렇게 유도를 합니다.

사고가 긍정적이며 순수한 사람이 잘 늙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 몸의 세포는 나의 마음에 아주 민감히 즉시 반응하며 나의 마음이 나의 건강과 미래를 결정짓게 해주는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가장 어리석고 우매한 사람이 '난 안돼~' 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 어떤 큰 능력을 가진 능력자도 이런 사람은 절대 구제할 수 없습니다.
이러면 그 기운이 나의 내면 깊숙히 각인되어 뭘해도 안되는 인간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이 한 것이지 남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처지를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니 이런 생각을 가지신 분은 그 사고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과제입니다.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선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중에선 좋은 것 그렇지 못한 것 모두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하신 분이라면 그 모든 것이 나를 성숙시키고 그릇을 키워준 값진 것이라 좋게 생각하셔야 하겠습니다.
그중엔 떠올리고 싶지않은 좋지 않은 기억들도 있겠지만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없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인생을 좀 더 살아봐야 하며 '나는 성숙하지 못한 인간입니다.'를 반증해주는 것입니다.
아무튼 계속 그것에 집착한다면 문제가 되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가진 것이 됩니다.

정리해서 핵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하는 법은 형식이 없다."
"기도의 대상은 내가 믿고 경외할 수 있는 존재, 혹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
"신과 조상은 나의 소원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존재가 아니다. 내 스스로의 마음을 자연의 파장과 일치하게끔 하여 소원이 이뤄지는 것이다."
"기도는 즐겁고 행복하게 해야한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타고난 운명이라는 것은 그것으로 유도된다는 것이지 꼭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마음과 기도로서 자유의지대로 살아 갈 수 있다."
"아주 작은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인생이 개선되지 않으며, 확실히 이뤄진다는 믿음을 갖고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기도도 다 이뤄진다."

모두 나름대로 기도(명상,참선 포함)를 하셔서 풍족하며 멋지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