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똥철학

초능력을 가지고 싶은가

금빛오오라 2008. 10. 2. 16:06

동물들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초능력이라고 하는 감각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휩쓸어 많은 인명피해를 가져왔을 때도 사전에 동물들의 움직임이 달랐다 한다.

코끼리가 주인을 재촉하여 일치감치 산 높은 곳으로 옮겨가서 살아날 수 있었다는 것이 TV에 나왔다.


물개가 북극곰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얼음판에 구멍을 여러 개 뚫어 놓는데, 물개는 일정시간마다 호흡을 해야 하므로 공기를 마시러 올라와야 한다. 북극곰이 물개를 잡기위해 물개가 뚫어놓은 얼음판 여러 개의 구멍 중 하나를 선택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을 맞출 가능성이 확률에 미치지 못하며 매우 낮다고 한다. 얼음 층이 두꺼워 물 안에선 밖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박쥐가 나방을 초음파로 쏴서 잡아먹는 것도 신기하지만, 나방은 공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뒤에서 공격이 가해지는 순간 급선회를 하여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수천수만 마리의 새떼들이 무리를 지어 하늘을 이리저리 정해진 방향 없이 동시에 움직여도 어느 하나 충돌하는 것이 없다.

그 외 비둘기나 철새들이 탁월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


아무튼 동물들이 이러한 자연적인 감각이 민감하며 발달해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에서 각성된 감각이다.


동물들은 그 기능을 매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에 처해져 있어 감각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고로 감각적인 측면에서 보면 약자일수록 더 발달 될 가능성이 많다.


자신을 잡아먹으려하는 다른 동물들의 공격을 하루에도 몇 번 내지는 수십 번 이상도 받게 된다. 그것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초자연적인 감각이며 그들의 불안정한 환경은 이 기능이 퇴화될 틈을 주지 않았다.

(‘초자연적’ 이 아니라 ‘자연적’ 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해를 돕기 위해 초자연적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위기에서 그 위험을 감지하는 센서가 작동된 것인데, 이러한 것은 사람에게선 간혹 일어난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꿈자리가 불편해 ‘오늘 몸 조심해라. 어디 가지 마라.’ 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사례와 같은 것은 흔히 들을 수 있다.


처음 가는 곳인데 언제 와 봤던 느낌이 드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본다.


왜 영적으로도 수준이 높은 인간은 동물들에 비해 그런 감각이 무딜까.

그 이유는 사용을 하지 않아 각성이 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인간세상은 동물만큼 매일 혹은 자주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 원시시대에선 환경으로 인해 인간의 초자연적인 감각이 더 발달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현재는 그런 감각이 모두에게 있으나 감각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 뿐이다.

이런 초자연적인 감각 외에도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오래전 방송에 나왔던 것인데..

어떤 이는 감옥살이를 할 때 고문을 워낙 많이 받아서 그것에 적응하는 법을 익혔다 한다.

아무리 고문을 당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한다.

긴 쇠로 몸을 관통시켜도 고통을 느끼지 않음을 증명해 보였다.

이것이 유체이탈로는 보이지 않는다.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최면이 아닌가하고 이해하고 있다.


만약 인간이 매일 동물과 같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환경이었다면 초자연적인 감각은 각성되었지 않겠는가.

인간이 동물적인 뛰어난 감각을 가지기 위해 생명의 위협을 매번 경험토록 일부러 환경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 하다. 다만, 인간은 수준 높은 영적 존재이니 그러한 감각을 의식적으로 각성시키며 구도하면 훨씬 뛰어난 초능력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하니 탐욕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며 자연에 역행하는 자는 절대 이런 능력을 가질 수 없다.


삼명(숙명명, 누진명, 천안명)이라고 하는 신통력, 이것에 세 개를 더한 육통.

즉 어디든 갈 수 있는 신족통(神足通), 어디든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 듣지 못하는 것이 없는 천이통(天耳通), 다른 것의 마음을 읽는 타심통(他心通),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 보는 숙명통(宿命通),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고 인간의 번뇌를 끊을 수 있는 지혜인 누진통(漏盡通) 이다.


이러한 것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혹독한 수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생겨나는 것인데..

그것은 구도하는 자가 인간고, 물질고, 육신고 등 인간세상의 수많은 번뇌와 고통을 거쳐 인간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일어선 자가 받는 선물이다.


그것의 구체적 수련법이 다양하다해도 하나로 귀결된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깨우침의 수행이다.


간혹, 사고나 큰 정신적 충격을 겪으며 초능력이란 것이 생겨났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충격을 받을 때 자신의 파장이 급격히 떨어져 그 틈을 타 영혼이 빙의된 것에 불과하다.

저급한 영들도 가질 수 있는 능력이며, 얼마가지 못해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심하면 자신의 영혼이 망가지고 죽게 된다.


자신의 수준이 되지 않는데 그것에 대한 지나친 동경은 미천한 영에 빙의되기에 딱 맞다.

이런 때에는 수준 높은 스승이 있음이 유리하다.


아무튼 우연히 혹은 쉽게 얻은 것은 수행하여 얻게 되는 신통력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다.

영의 간섭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함은 수행자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며 자신이 스스로 바른 마음을 가지며 항시 노력하는 자에겐 저급한 영들이 접근하지 못한다.


일부 수련법에서 일부러 귀신을 불러 어떤 능력을 가지려하는 자들이 있는데, 아서라. 자신의 영혼을 팔아 미천한 존재의 능력을 빌어 쓰는 것에 혹해선 안된다.


누구나 초능력이라고 하는 것을 갖고 싶어 하나 자신의 수준이 되어야만 가질 수 있다. 만약, 그런 수준이나 그릇이 되지 않는 자가 가지게 된다면 감당하지 못해 영혼이 피폐해지며 육신의 이상 현상 등 역효과가 나거나 죽게 된다.


귀신을 보고 놀라는 자가 더 한 것도 보게 되는데 감당할 수 있을런지...

머리가 으깨져 있고, 내장이 배 밖으로 튀어 나오며, 머리 팔 다리가 없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런지...

살아 있는 자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자기를 해하게도 되는데 그것을 물리칠 수 있을런지...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하는 자가 아무도 모르는 진리를 알게 되는데 혼자만 그것을 묵묵히 담아갈 수 있을런지...

다른 사람의 평가에 마음을 쓰는 자가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를 바보라 손가락질해도 버텨낼 수 있을런지...

작은 어려움에 슬퍼하며 회피하려는 자가 온갖 문제에 얽혀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 등 감당키 어려운 상황에 직면케 되는데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런지...

이념과 사상에서 조차 완전하지 않은 자가.. 진실을 볼 수도 없는 자가.. 자신을 지키며 개입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런지..

작은 문제에 얽매여 자신을 허비하는 자가 수많은 인과관계에 초탈해질 수 있을런지...

이런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봐야한다.


자신의 수준과 자신의 그릇 만큼 능력이 담기게 되는 것이니 노력은 하되 조급해 하지 말아야한다.

고귀한 능력은 나 자신이 수양하여 지극히 높은 존재가 되었을 때 받게 되는 것이며, 그러해야 문제가 없다. 그러하니 자신의 수양에 애를 써야 한다.


자신이 육신의 고통에 어느정도 버틸 수 있는지 수시로 되돌아 봐야한다.

자신이 물질의 욕망에 어느정도 버틸 수 있는지 수시로 되돌아 봐야한다.

자신이 가장 믿고 있는 자를 비롯 모든 인간이 자신을 등지게 되는 인간고를 겪더라도 흔들림이 없는 지 수시로 되돌아 봐야한다.

어떤 것에 대한 내면 깊숙한 진리를 보고 있는 지 수시로 되돌아 봐야한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자는 발전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자는 자신 안에 오만함으로 가득차 발전할 수 없다.


바른 마음으로 꾸준히 자신을 닦아가다 보면 자신의 그릇에 맞게 능력을 갖추게 되며 이러한 능력은 혼령 혹은 귀신이라 하는 존재의 능력을 훨씬 능가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쉽지 않다 해도 두려워않고 꾸준히 수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자세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며, 과정을 거쳐 성장하여 수준 높은 인간으로 태어나 초능력이란 것도 갖게 된다.

특별한 초능력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전두엽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보통 상단전이라고 하는 곳으로서 하느님 하늘과 통할 수 있는 통로이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맑고 아름다운 마음을 찾으면 전두엽은 빛을 내고 활성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