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똥철학

종교를 목적으로 여기지 말고 마음 닦는 도구로 활용하라.

금빛오오라 2009. 4. 22. 21:34

종교가 세상을 오히려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다수는 무지하여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조차 잘 알 지 못한다.

종교는 어떠해야 하며 각자 개인은 어떠해야 할까.

 

 

탐욕스럽고 더러운 이들이 종교를 수단이나 도구로 이용해 왔다.


종교는 권력가들과 무지한 자들에 의해 점점 원래의 것에서 멀어져 왔다.

탐욕스럽고 지저분한 자들이 제 욕심을 채우는데 종교라는 것을 이용해 왔고 현재도 그러하고 있다.('종교는 권력쟁취를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번성해 왔다' 참고)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변화를 겪을수록 종교라는 것이 백성에게 마음을 사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으며 혼란의 틈을 헤집고 들어오기가 수월했다.


과거 유럽 강대국들이 아프리카, 남미, 북미의 땅과 황금을 뺐고 그들을 몰살시켜 멸망케 한 것과, 땅을 뺏으려 십자군전쟁을 했던 것, 부시의 타국침략 등..

이들은 그것을 신의 뜻이라 한다. 그들은 신을 꾸며대며 제 말을 듣지 않으면 신성모독이라 하여 목숨을 앗아가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신의 뜻이라느니, 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느니 하며 애써 의미를 부여하여 제 하는 짓들을 정당화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게 신의 뜻이라 생각되는가?

가만히 있는 신을 어찌 그렇게나 더럽힐 수가 있는가. 적지 않은 이들이 무지하여 그것이 탐욕스런 자가 지어낸 거짓이라는 것조차 잘 알지 못한다.('신과 인간은 각각 독립적이며 동등한 자격체이다.' 참고)


우리나라 역시 시대가 바뀔 때 등 정통성 없는 권력층이 권력을 잡을 때일수록 백성에게 마음을 얻기 위해 종교로 신심을 이용해 먹었다.

특히, 외세에 간섭받고 일본에 주권까지 빼앗겨 정부가 제 역할조차 하지 못하는 혼란기를 틈타 기독교는 무방비로 유입되었고, 광복 후 친미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세력의 힘까지 입어 빠른 성장을 하게 되었다.

나라가 혼란한 시기에 탐욕스런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고 목마르고 배고픈 무지한 이들을 통해 쉽게 파고들어 기형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권력을 가진 자 혹은 권력을 가진 자의 편에 서는 무지한 자로 현재까지 존재하게 되었으며 이념대립을 만들어 가는 주 세력이 되었다.


미국에서 보수기독교 세력이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고 그들은 종교에서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다수를 위한 복지보다는 소수를 위한 지배 권력층의 기반 다지기에 더 애를 쓰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도 그들을 따라가고 있다. 수준 낮고 미천한 이들을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에 대한 신심을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적으로 결부시키며 개입하고 있는 참으로 희한한 종교이다. 이들 중 자칭 보수라고 하는 이들이 많으며 그 층을 단단히 결집시키고 있다.

오래전이나 현재나 종교가 정치 사회문제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탐욕스런 이들에 의해 변질되었거나 사이비이다.


이전과 현재 그들이 하고 있는 짓을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자라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지만 애써 보려 하지도 않고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종교 안에 있는 자일수록 그러한데, 그것으로 진실을 보기 어려워 진 것임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인간이 어찌나 어리석고 무지한지 눈에 훤히 보이는 짓거리에도 판단능력 조차 별로 없다. 특히,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진 이들 중 이러한 자들이 많으며 심각하다.

그래서 탐욕스런 권력가나 지도자들이 종교에 대해 부풀리고 막연한 신비감을 조성하여 신심을 강제적으로 백성들에게 유입시켜 왔던 것 아니겠는가.

그럼, 답은 나왔다. 종교는 만들어진 거품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훤히 보이는 거품이다.


어떤 종교이든 시간이 지날수록 변질되어 거품은 발생키 마련이다. 탐욕스런 정치세력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해도 정도의 차이일 뿐 별 다를 바 없다.

게 중엔 자신의 믿음에 더 큰 믿음을 애써 부여하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신비롭게 꾸미기 위해 황당한 얘깃거리를 가져와서 갖다 붙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종교의 수준이 낮을수록 그러함의 정도는 심해지며 수준이 낮은 자일수록 진실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없어 부풀려진 것에 혹한다.


제 수준에 맞게 그러한 종교를 갖게 되어 있으며 그만한 수준의 종교에 그만한 수준의 종교인들이 모이게 되어있다.


종교라는 것이 무슨 특별히 보이는 일이나 이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나 대개는 이러함에 끌린다. 그 자신이 그것밖에 되지 못하므로 이런 것에 마음이 가는 것이다.

탐욕스럽고 무지한 인간이 혹세무민하여 조작한 껍데기에 알맹이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이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지 바다가 갈라지거나 하늘이 열리는 것 등으로 꾸며대는 것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에서 사탄이니 악마니 하며 인간의 사후 영혼을 천대시하는 이유는 미천한 영혼만 접해봤음이 아니겠는가. 사탄이라 하는 것도 원래는 그런 뜻이 아니었으며 조로아스터교에서 제 멋대로 이해하고 가져와 갖다 붙인 것에 불과하다.

그들이 신을 알고 있는가. 그렇다고 고귀한 자가 어떤 자 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가.

인간의 영혼을 악마와 같은 존재로만 생각한다면 그들 역시 악마로 밖에 될 수 없었기에 그렇게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최고의 신만 절대적이고 고귀한 존재가 아니며, 인간이 모두 천한 존재가 아니다. 그 둘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탐욕스런 자들과 무지한 자들 덕분에 기독교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수준 낮은 종교가 되었다.

세상에서 탐욕스럽고 미천한 자들을 끌어다 모은 집합소역할을 하고 있다. 개중엔 변화를 가지려는 깨인 이들이 있지만 극소수이다.


그 외 다른 종교들도 정도의 차이일 뿐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원래와는 달리 변질되었거나 핵심에서 멀어져있다.

종교는 종교다워야 하며 최소한의 수준은 갖추어야 함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종교는 목적이 아니다. 종교를 수단이나 도구로 잘 활용하라.


이전에 오신 선각자들의 뜻과는 달리 종교가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든 죄가 크다.

그들이 달을 보라 가리켰는데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을 보고 있는 것과 같다.

마호메트는 이러한 점을 일찍이 깨닫고 무지한 인간들이 이러할까 염려하여 예수나 자신은 신이 아니니 신으로 여기지 마라 했던 것이다.


종교의 가르침은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 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을 찾아 애쓰며 노력하란 것이 핵심이다.

핵심은 잊어버린 채 겉만 핥아선 안 될 것이다.


종교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종교를 껍데기, 혹은 수단이나 도구로 생각지 않고 자신이 안주해야 할 곳, 또는 도달할 최종목적지나 최고의 가치라 여기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고 파생된다.


종교 안에 있다는 믿음과 자부심이 강한 자일수록 연막에 가려 영적 성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작은 문제조차 가릴 수 있는 힘을 잃게 되어 분쟁, 종교전쟁 등이 일어난다 해도 그것에 대한 분별력조차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종교가 오히려 무지한 인간들의 고름덩어리 집합체가 되어버렸다.


종교나 어떠한 믿음, 다양한 수련법 등은 자신을 닦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지 목적이 될 수 없다.

종교에 대해 절대적인 소속감을 가지려 하는 자일수록 이것에서 벗어나기가 더 어렵고,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는 깊이 있는 깨우침을 가지기 어렵다.


종교라는 껍데기와 틀을 벗어 던질 수 있으려면 종교를 목적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나 자신이 스스로 깨닫기 위한 도구나 수단에 불과하다 라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것에서부터 출발하여야 종교에 집착치 않게 되고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벽을 스스로 만들지 않게 되며 시야가 넓어지게 되는 것이다. 좁은 시야에서 얼마나 진실을 볼 수 있겠으며 마음을 닦아봤자 얼마나 닦겠으며 깨우쳐봐야 얼마나 깨우치겠는가.

종교에 대한 맹목적이고 지나친 믿음은 스스로를 구속시키는 것이 되며 이러한 자는 수준 높은 깨우침을 가질 수 없다.


경전을 통째로 외우는 게 노력이 아니다. 좋은 말씀을 그대로 읊어대는 것이 노력이 아니다.

경전의 내용을 많이 알수록 자신이 다른 이와 특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대개 집착일 뿐 바른 신심을 찾기 어렵다.

그러한 것들이 미리 자리 잡고 있으므로 자신 스스로 발견해내기는 더 어렵게 된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반복해서 의문을 가지고 많은 사고를 해봐야 하며, 스스로 답을 찾으려 애를 써야 그 무엇을 가질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종교의 거품은 서서히 꺼지고 핵심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종교에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개입되고 변질되어 연막으로 가려져 있으니 무지한 자들이 진실을 알기는 쉽지 않으나 바른 마음으로 찾으려 애쓰는 자는 반드시 찾게 되어있다.


옛 성인의 말씀, 경전, 등.. 모두 다 하나이며 다른 게 아니다.

난해하고 멋있고 일반적으로 잘 사용치 않는 문구여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은 껍데기이며 전혀 몰라도 상관없으니 그것을 애써 아름답게 보려함이 없어야 하고 애써 가치를 두려함 역시 없어야 한다.


세상에서 좋은 말씀들은 다 모아놓은 것이지만 그 모두를 구체적으로 알아가며 실천한다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하나를 가지게 되면 모두를 알게 되고 스스로 실천하게 되는데, 그 하나라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바른 마음이다.

이것으로서 진리의 말씀들 모두가 하나에서 나온 것임을 스스로 알게 된다.

그 마음의 주체는 자신이니 현재 종교가 혼탁하고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 자신에게서도 책임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신과 같은 마음을 가지려 애쓰는 자.. 논어, 경전, 도덕, 그 어떤 종교도 별 필요 없다. 그것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 씀씀이가 여러 가지로 파생되어 성인의 말씀, 계율, 율법, 도덕, 예절 등으로 나눠지게 된 것이다. 무엇이 먼저 인지를 알아야 하나 대개는 거꾸로 생각하고들 있다.

그것을 억지로 외우려고까지 애쓰고 있으며 스스로 생각함이 부족하기에, 연막 속에서 헤매며 진실을 찾지 못하고 깨우치기도 어려운 것이다.


종교인이라면 종교의 틀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임에도 알려하지 않고 스스로도 그것에 구속되기를 바란다.

하루에도 진리의 말씀들을 많이 듣고 집착치 말자, 오만하지 말자 라 스스로 되새겨도 그것이 자신의 집착과 오만에서 오는 것인 줄은 생각지 못한다.

그러한 마음에 무엇이 들어갈 틈이 있겠는가.


종교를 목적이 아닌 수단이나 도구로 여겨라 하니,

탐욕스러운 자들이 추악한 짓을 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해먹었던 것을 두고 도구로 사용했다 할 것이 아닌가.

그것은 그들이 영악하고 교활하여 제 욕심을 채우는 데에 이용한 것이고 그들에게 바른 마음이나 신심이란 것은 없다.

자신이 마음 닦는 도구로 여기는 것과 제 욕심 채우는 것에 이용해 먹는 것이 같을 수 없다.

다수는 종교에 대해 맹목적이어서 연막에 가려 분별력조차 그리 없으니 영악한 자들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인도의 신분제도 역시 부정하게 권력을 가진 세력이 그들의 부와 권력을 지키고 뺐기지 않기 위해 종교를 내세워 곤고히 만든 것임에도 대개 인간들의 무지로 그것에 종속되거나 무의식화 되어 왔고 현재도 모두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인도의 힌두교는 소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지나쳐 섬기기까지 한다. 그것을 지키는 않는 자는 종교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자라 여긴다.

깨우침이 부족하여 진실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어 환생설을 믿고 가장 가까이서 키우는 동물을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인데 종교라는 껍데기에 치중하니 소를 잘 섬길수록 신심이 두터운 자라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 믿음은 절대적이고 맹목적이다.


인간이 이토록 무지하며 무엇에 구속되기가 쉬운데...



바른 종교와 사이비의 차이, 종교와 종교지도자의 덕목


수준 높고 바른 종교라 하면 이념과 사상을 주입시키지 않는다. 마음 닦는 것 외의 문제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정치 사회문제 등에 대해서 언급조차 없으며 그러한 것에 개입하지 않는다.


절대적 믿음을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맹목적 믿음을 바라지 않으며 스스로 깨우칠 수 있게끔 굵직하게만 전하지 세세한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좋은 글귀로 꾸며대지 않으며 글을 아름답게 보이려 하지도 않으며 구차함이 없고 아주 명료하다.


이적이나 신비로움을 내세우지 않는다.


부족함에 허덕이며 넉넉해짐을 스스로 경계한다.

물질세계이니 최소한의 경비를 제외하곤 돈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부유하지 않다.


강제적이지 않으며 억지적이지 않다.

오는 이 막지 않으며 가는 이 잡지 않는다.


권력을 손에 거머쥔 사이비 종교 세력들로부터 방해받아 성장하기 어려우며, 인간 대다수의 안목이 수준에 미치지 못해 찾기 어려우니 잘 드러나기 어렵다.


위의 반대를 생각하면 사이비종교가 무엇인지 답이 나온다.

정치 사회문제에 개입하며, 절대적 믿음을 요구하고, 좋은 글귀로 세세히 명문화되어있고, 이적이나 신비로움이 많고, 돈을 요구하며, 믿음을 강요하며, 애써 전파하려하고, 애써 사람을 종교 안으로 데려오려 하며, 권력을 행사하려 하고, 쉽게 찾을 수 있다.


바른 종교지도자는 자신 스스로도 마음 닦아 가기에 바쁘며 평생 수행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

나이를 많이 먹어도 기력을 잘 잃지 않으며 눈빛은 맑고 깊고 또렷하며 따뜻함과 매서움이 함께 공존한다.

경제적 풍요로움을 갈구하지 않는다.

세세한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자신을 믿으라 말하지 않는다.


부족한 종교지도자일수록 자신을 믿으라 하며 믿음을 강요한다.


어느 영적 지도자가 제 종교만이 혹은 자신을 통해서만 최고의 신을 만날 수 있다 하는가.

인간 누구에게나 그 채널이 열려있는 법이다.

대개는 무지하여 그것을 스스로 찾기 어렵고 노력한다해도 오히려 멀어지게 될 수 있는 불안정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들에겐 바른 종교가 필요하고, 그 종교의 지도자는 방향제시만 할 뿐 많은 부분을 각자에게 맡겨야 한다.

바른 종교나 바른 영적지도자는 스스로 마음을 열어 생각하게 하고 노력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한 것들이 자신을 대신하여 이루어주지 못하며, 그것에 대한 믿음과 소속됨으로 이루어짐이란 것은 없다.


그것(종교, 단체, 영적지도자)에 대한 소속감을 스스로 강하게 가지려 애쓰는 자, 혹은 애써 의미를 두려는 자일수록 수준은 낮으며 발전하기 어렵다.

그것에 대한 절대적 가치를 두는 마음이나 절대적 믿음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부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스스로 이루려 바르게 노력하는 자에게 종교라는 것은 오히려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 될 수 있으며 이런 이들에겐 종교는 별 필요가 없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 그만한 그릇이 되기 어려운 자, 스스로 노력하여 자신을 찾기 어려운 자, 매사에 수동적인 자는 바른 영적 지도자를 따르는 것이 방향설정에 도움이 된다.


종교나 영적 지도자가 가르치려 함이 크거나 이끌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면 자칫 제자나 종교인들의 발전을 가로막게 될 수 있다.

영적 지도자는 제자나 종교인들을 가르치는 이가 아니다. 스스로 알도록,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방향설정만 해주는 것이 시작이자 전부이다. 그것이 가르침이라면 가르침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영적 지도자는 생각하게끔 만들지 세세한 가르침을 주지 않으니 무지한 이는 그것을 지도자의 능력부족이라 여기기 쉽다.

그러한 수준 높은 영적지도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일 뿐 그 영적지도자를 탓해선 안 된다.

자신이 그만한 안목과 수준이 되지 않기에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것이다.


다른 이들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라 하는 이들조차도 깨우침이 높은 이 그리 없으니 평범한 자들은 그들에게 무엇을 배우랴.

이전 성인의 말씀을 그대로 늘어놓는 것 밖에 되지 않고, 배우고자 하는 이들은 그것을 똑같이 따라 말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다른 이를 이끄는 입장에 있는 자일수록 무엇이 바른 가르침인지 스스로 깨우쳐야 일반인들의 영적 지체나 퇴보를 그나마 막을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의 안목과 수준이 낮으니 그들의 말을 다 믿지 말고 제 스스로 알아보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조차도 의심 해보고 왜 그런지 생각도 해보고 고뇌에도 빠져보고 스스로 답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최고의 스승은 자신이다.


최고의 스승은 누구인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바로 자신이다. 이것을 모르는 자, 혹은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는 자는 바른 영적지도자를 찾는 것이 방향설정에 도움이 된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기존의 지식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게 모두 자신의 것이 되고 정답이 된다.

그러니 대부분의 많은 지식을 암기해야하며 그 위에 자신의 연구결과가 더해져서 학문이 점점 발전하게 되는 것인데..

마음 닦는 것은 이전 선각자의 깨우침과 수준을 그대로 가져와서 그것에 자신의 것이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배워 많이 알고 있다해도 혹은 경전을 달달 외우고 있다해도 자신이 깨우쳐 알게 된 것과 같을 수 없다.

다수는 자신의 앎을 내세우지만 알고 있는 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불교는 한국불교와는 달리 화두에 대해 정해진 답을 말하도록 가르친다.

깨우침은 스스로 밖에 이룰 수 없는 것인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조차 잃게 하니 그들의 수준을 스스로 잘 증명해 주는 셈이다.

종교나 지도자의 경전이나 설법을 제자나 신도들이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는 것에 대해 입문 선배로서 경계해야함을 강조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러하고들 있으니 발전할 수 있으랴. 깨우침을 얻을 수 있으랴.


이러한 방법은 학교에서 암기로 배우는 지식과 다를 바 없다.

현재 학교교육 또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교육의 비중을 훨씬 더 많이 둬야함이 바람직하며 앞으로 점점 그렇게 변해 갈 것이다.


종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정도라면 나쁘다 할 수 없지만, 종교 안에 있다하여 선택받은 자나 특별한 자, 혹은 높은 존재인 것처럼 여기는 이 적지 않으니 문제가 된다.

그것이 집착이 아닌지 혹은 찾고자 하는데 방해요소가 되는 건 아닌지 반드시 되새겨 봐야 한다.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도 계속적인 의심을 하고 답을 찾으려 애쓰는 노력을 하다보면 발견하게 되는데 이러한 노력을 하는 이 많지 않다. 그러니 어찌 그 수준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종교라는 껍데기에 매달리려 하는 자일수록 방향설정과 기본구도를 잡기 어려운데 아무리 열심히 한다해도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 공염불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신심이 아니라 집착이다.

그러나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일수록 오히려 자신의 신심은 두텁다 생각하고 자신이 무슨 큰 능력이 있는 마냥 생각하며 특별한 존재라 여기는 착각에 빠져 있다.

수십 년 종교를 믿어왔다거나 도를 닦았다 해도 별 다를 바 없다. 미천한 혼령에 빙의되었으면서 무슨 큰 영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무지한 것은 죄가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무지함 그 자체는 죄라 할 수 없으나 그것으로 시작하여 탐욕함, 편협함, 이기주의, 개인주의, 황금만능주의.. 등 이 모든 것들로 나눠지고 확대된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조차 어려운 혼돈의 세상이 되었으므로 무지한 이 자신도 그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자신이 자신을 보려함에 노력치 않는데 무엇인들 제대로 볼 수 있으랴. 자신을 보는 것과 종교나 그 외의 것들을 볼 수 있는 안목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종교라는 껍데기에 쓸리지 말고 핵심을 내다보는 안목을 스스로 키워야 할 것이다.


종교에 대한 믿음이 투철하다하여 특별한 자, 고귀한 자라 하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며, 오히려 종교라는 것에 스스로를 구속시켜 깊이 있는 깨달음을 가지기가 더 어려운 자에 불과하다.

무속인들이나 영능력자들이 몸주를 둠으로서 큰 영적성숙을 이루기 어려운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이 벽이 되어 발전가능성을 막게 된다는 공통성이다.

다만 지극히 높은 지도자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은 평범하지 않으나 역시 그 벽은 존재하기 마련이니 수행자는 이것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 주체는 자신이다.


종교 안에서는 종교, 경전, 지도자, 기도의 대상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으로 스스로를 구속시켜 깨우침을 가지기 어려우니 제3의 눈으로 종교 안의 자신을 수시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며, 바른 마음으로 이러함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종교나 영적지도자 등이 스스로 깨우치는데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늘 하셨던 말씀이 있다.

'내가 하는 말을 무조건 다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너희들 스스로 보고 생각하고 분석하고 경험한 뒤에 받아들여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경계하며 스스로 깨우치게끔 하는데 애씀이 크셨던 것으로 짐작된다.


스스로 깨우치는 것에 노력이 부족한 자는 수많은 화두와 의문점에 대한 모티브조차 마련키 어렵다.

스스로 바른 마음을 가지려 애쓰는 자는 자연히 방향이 잡히게 되며 진실을 하나씩 알아가 깨우침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절대적 믿음을 강요하는 지도자일수록 수준이 낮으며,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방향만 잡아주는 지도자일수록 수준이 높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진리의 말씀의 깊이를 알 수 없으며, 들어서 많이 알고 있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 앎의 가치는 미미한 것이며 오히려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기 쉽다.


종교지도자가 걸었던 수행방법을 제자가 그대로 따라야만 된다는 건 아니다.

물론, 그것을 똑같이 경험해보는 것이 제자로서의 마음자세이기도 하고 좋을 수 있지만, 스승이 걸었던 길을 똑같이 제자가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듯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각자에게 맞는 수행법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또 무엇으로 특별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바른 마음으로 수행을 하는 자에게 있어서 그가 인생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자신을 닦아가는 수행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환경에선 수행이 어려우니 수행자는 스스로 부족함과 힘겨움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인생의 목적' 참고)

부족한 환경에서 자신 내면의 마음이 각성될 수 있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깨달아 그 무엇을 찾게 된다.


육신을 혹사시키는 것이 반드시 좋다고 할 순 없다. 경험은 필요하나 절대적이지 않다.

그것 역시 깨우침을 가지기 위한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육신을 혹사시키는 수련법)을 달성했다해서 이루었다 할 수 없다.

마음을 갖추지 못한 자에겐 자랑거리가 될 뿐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힘겨운 삶을 살았다하는 모두에게 그 경험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 힘겨움으로 인해 어떤 이는 더 집착하게 되고 어떤 이는 오히려 더 소탈해지게 되며 어떤 이는 성숙해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가치 있는 깨우침을 가지는 이도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마음이 바르다면 인생에서 겪는 그 모든 것이 수양도구가 된다. 그런 마음을 갖추지 못한 이는 무엇에 집착함이 점점 커져가고 스스로 미천한 자로 만들어가게 된다.


인간은 육을 갖고 있기에 고통을 알고 미묘하고도 급변하는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육신을 고통의 덩어리라고도 하지만, 살아서 그만큼 닦지 못한 자는 죽어 육이 없어지게 되면 더 큰 고통과 힘겨움에 시달린다.

살아있기에 고통의 덩어리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경험할 때, 내면의 자아가 각성될 수 있고 빠른 영적 성숙이 가능하다.


그 어느 뛰어난 영적지도자가 제 아무리 큰 능력을 갖고 있고 나눠줄 수 있다해도 그것을 받을 그릇이 되지 못하는 자는 받을 수 없다.

그 영적지도자라는 것은 개개인의 그릇을 키워 능력 주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며 그릇을 키워갈 수 있도록 마음을 잡아주는 이에 불과하다.

자신이 그만큼이 되지 않는데 스승의 능력을 받았다 해선 안 될 것이다.


신은 어떤 이가 예쁘다하여, 마음에 든다하여 능력을 주거나 신의 대접을 하지 않는다.

마음 닦는 이들이 겉은 그렇지 않은 척 하지만 속은 이러한 점을 무시해버리고 자신이 신의 선택을 받았으며 신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종교를 갖고 있는 이들이 이러함의 정도가 지나친데, 종교 안에 있다하여 스스로 애써 특별한 자라 여기고들 있다.

그러한 자중 발전 가능성이 있는 자 드물며, 그런 생각이 스스로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임을 인지해야만 할 것이다.


또, 자신과 자신의 조상은 수준이 높은 줄로만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자는 스스로 벽을 만들어 조상의 수준도 넘기 쉽지 않다.

마음 닦는 이는 자신 조상의 수준 또한 훨씬 뛰어 넘어서야 하며 그것에 종속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하니 그들의 이끎이나 가르침이 모두 바른 것이라 여겨서도 안 된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자신은 깨우침과 바른 이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조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조상이 자신을 보고 배우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우주의 주체는 나이며 내가 바른 마음으로 스스로 닦아가야 한다는 것임을 진정으로 인식할 수 있는 자만이 그것이 가능하다.



수준이 되면 서로 통하며 한곳에 모이게 되어있다.


종교는 자신 스스로의 깨달음 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개인의 지극히 높은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바르고 수준 높은 영적지도자는 그것을 잘 알기에 종교로만 구속시키려 함이 없다.

마음을 닦아가는 자들에게 있어서 길이라는 것은 다 같은 순 없으나 종착역은 같다.

각 종교들 또한 일정수준 이상이 된다면 하나로 통하게 되며 모두 한 곳에 모이게 되어있다.


종교 안에 있는 자, 종교 밖에 있는 자, 종교가 다른 자 등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바른 마음으로 깨우침을 얻고자하는 이들이 일정수준 이상의 깨달음을 가지면 모두 하나로 통하게 된다.

종교를 초월하여 하나로 모이게 된다. 그러니 종교에 자신을 묶어두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할 것이나 편협한 이들 중 자신이 거기에 얽매여 진실을 보고 있지 못함을 아는 이 없다.

그것에서 스스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자가 진실(=진리)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껍데기라 할 수 있는 이념, 사상, 의식 등 모두 마찬가지이다. 종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종교인이 아니라해도 자신이 스스로 마음을 닦아가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현재는 각 종교가 변질되었거나 수준이 미치지 못해 오히려 편을 가르고 분쟁을 부르고 있다.

일정단계의 수준까지 올라가면 종교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가 온다. 그때 비로소 하나로 통합이 되는데..

무엇을 찾기 위해 갈구하는 마음이 절실해야 하며 인간의 마음이 변하지 않고선 그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러니 외부적인 큰 영향이 있지 않고선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 마음에서 찾으라. 바른 종교를 찾으라.


대개는 자신이 영적으로 성숙하기 전, 진실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기 전에 이미 종교에 빠져 있어 맹목적 믿음을 가지기 쉽다. 무지한 이들의 강요나 세뇌에 의해서...

개중엔 스스로 진실을 볼 수 있어 떨쳐버린 이도 있을 것이지만 그러하지 못하는 이도 많다.


스스로에게서 찾지 못하는 자나 스스로 깨닫기 쉽지 않은 자는 종교 안에서 찾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어설프고 수준 낮은 종교 말고 바른 길로 인도해 줄 수 있는 지극히 수준 높으신 분을 찾아야 함은 자신에게 맡겨진 최소한의 숙제이다.

자신이 바르면 그러한 것이 보이기 시작하며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러함에 꾸준한 노력을 한 자는 무엇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안목 또한 가지게 된다.

그 안목은 종교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건 등 모든 것과 하나로 통한다.


스스로 깨닫기 어려우니 종교에서 찾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는 것이지 종교에서 반드시 답이 나온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종교에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어떠한 종교에서도 답을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니나, 바른 종교는 이러한 자들에게 가능성을 대폭 높여주며 생명과도 같을 수 있다.

종교 안에 있어서도 주체는 자신이며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인지해야만 한다.


종교란 것이 다수의 무지하고 평범한 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영적 지도자가 제 아무리 수준이 높다하더라도 몇몇만 골라서 특별한 깨우침을 얻게 하진 못한다.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이는 스스로 노력함이 누구 못지않은 이이며 이들이 큰 깨우침을 가져 고귀한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재목들이다.

스스로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이는 애써 종교를 찾을 필요가 없다. 제 마음에서 찾으면 된다. 신이 어디 있냐고 물으면 내 마음속에 있다 할 이들이다.

단, 자신의 믿음에 대해 스스로 의심하는 마음도 성장하는 만큼 할 수 있어야 하며, 지저분한 환경에 휩쓸려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을 스스로 바로 잡아갈 수 있어야 하며, 넉넉함과 부족함 힘겨움 등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하며, 스스로 부족함과 힘겨움을 애써 찾는 자여야만 가능하다.

자아가 약하거나 부족한 자일수록 주위 환경에 지배를 받으나 그것에 노력하는 자는 이것에 그리 지배를 받지 않는다.


어느 종교나 단체에서 개중 일찍 깨이거나 뛰어난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자일수록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오히려 가능성이 크다. 그 길은 더 험난하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오만에 빠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자신을 스스로 닦아 고귀한 자가 될 인물이라 짐작치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착각에 빠지는 자일수록 종교나 영적 지도자가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라 탓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갖춘 이는 종교 안에 있든 종교 밖에 있든 별 상관이 없다.

그릇이 되지 못하는 자, 스스로 깨우치기 어려운 자는 종교란 것이 큰 장벽이 될 수 있으나 그들에게는 장벽이 되지 않으며 종교라는 것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오만한 자의 부족함까지 종교나 영적 지도자의 부족함이라 떠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종교 안에 있는 것만으로 선택을 받은 것이라 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이미 그 수준은 짐작이 간다.

그런 지도자 분은 좀 더 바른 수양을 해서 제자들에게 바르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선택이라는 것이 바른 종교에서 1차 관문의 성격이라 하면 그나마 이해한다.


인간이 무지하고 노력조차 잘 하지 않으니 이러한 자들에겐 종교가 길을 인도하는데 방향제시가 될 순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제시를 잘 해줬던 종교가 지금껏 얼마나 있었던가.

종교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오히려 종교인들 스스로 만들어 더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던가.


종교로 인해 세상이 혼탁해지게 된 부분이 크다.

종교에 인간의 이기심이 개입되어 원래의 진리가 점점 사라지고 현재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게끔 되었으며, 이것을 구분할 안목을 가진 이 조차 별로 없다.


평생 기도하고, 평생 도를 구하고, 평생 염불을 외면 도를 깨칠 수 있는가? 그것이 아니다.

종교를 가지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수준을 높여라. 바른 마음으로 자신 스스로를 닦아가다 보면 종교는 물론 세상 모든 것의 진실을 보는 안목 또한 가지게 된다.

그것을 찾은 자는 어떤 종교이든 어떤 경전이든 원래의 핵심이 다 하나로 통하게 됨도 알 수 있게 된다.

자신 스스로 깨달아 얻었다면 진리의 말씀, 성인의 말씀을 쫓을 필요도 그리 없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그것과 모두 통하기 때문이다.

바른 마음으로 수행을 하는 자에겐 그가 인생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자신을 닦아 가는 수행도구가 되며 종교는 그 하나에 불과하다.


말 한마디 한마디 사람 하나 하나 그것이 훤히 보이게 된다.

바른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하며 바른 실천을 하다보면 그 안목이 자연적으로 트이게 된다.

종교인들이나 수양하는 자들 대개가 스스로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다 생각들 하지만 그렇지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것이 쉬운 것 같으나 그리 쉽지 않으며 어려운 것 같으나 그리 어렵지 않다.



마음을 바꿔라.


종교만 바로 서도 세상이 이리 혼란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종교 안에서 마음을 닦는 이들일수록 종교라는 것이 무엇인지 바르게 인지해야 함이 우선이다. 이러함의 노력들이 모여야만 비뚤어지는 종교가 그나마 제 갈 길을 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바른 자들이 많아지면 탐욕하고 무지한 이들에 의해 부풀려지고 꾸며진 종교의 거품이 꺼질 수 있지 않겠는가.

자신의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버리고 그것이 내가 깨우침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인지하게 되면 타 종교에 대한 이해심도 생기기 마련이고 더 큰 것을 가질 수 있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최고의 신도 한 인간의 마음조차 바꾸지 못하니 말이다.

각자의 마음은 자신만이 바꿀 수 있다. 그것이 모이면 비로소 세상이 바뀌게 된다.


어찌 보면 어렵고, 어찌 보면 쉬운데...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은 누구나 하루에도 수십 번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것에 대한 믿음은 그렇게 잘 뒤집지 못한다.


바른 마음으로 찾다보면 진실을 알게 되고 진실을 알았다면 믿음의 마음조차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

세상조차 바꿀 수가 있는데 그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