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똥철학

산신에 대한 이해

금빛오오라 2014. 7. 13. 03:10

바른 수양을 해가다보면 반드시 신을 알게 되어 있고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근원을 찾게 되는데 자신의 뿌리는 부모와 조상이며 이 모두의 뿌리는 최고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있으며, 자신이 수양하여 깨우쳤던 하나하나를 종합해보면 결국 최고신의 마음으로 모두 귀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있고, 자신이 노력하며 찾고자 했던 최고의 가치가 바로 최고신의 마음이란 걸 알게 되어 있고, 최고신의 마음이 우주가 수억만년 유지성장해 온 비결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수양이든 목적은 최고신의 마음을 찾는 것이다. 일단 이 목적이나 목표조차 세워지지 않은 수양이라는 것은 방향부터 잘못되었거나 수준이 낮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우주에는 천신이 있고 지구엔 지신이 있다.
천신에는 8만4천 신장님이 계시고, 지신엔 2만여분의 산신님 등이 계신다.
천신은 지구를 포함한 우주질서를 관장하고 지신은 인간질서를 관장한다.
지구에서 산신 중의 산신은 지리산 산신이며 모든 산신을 대표한다.

 

부모의 존재이유는 자녀이듯이 신의 존재이유는 인간이다.
자녀를 위해 부모가 존재하며 인간을 위해 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와 같은 육을 부모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갖고 있던 것을 물려받아 나도 갖고 있는 것이며,
인간의 마음을 신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 마음을 물려받아 인간도 갖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그 조상의 정기(精氣 - 천지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이 되는 기운)를 이어받고, 그 부모의 정기를 이어받는다. 백두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태백산 정기를 이어받아.. 지리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등은 교가에 자주 등장하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 조상과 부모에게 정기를 이어받는데 그 지역 산신의 정기도 함께 내려받는다.

 

나와 조상이 하나임을 알게 되면 신과도 하나임을 알게 된다. 이것이 천지인이며 천지인은 각각 따로가 아닌 하나이며 우주의 질서이다. 그러하니 나를 낳아주신 부모와 조상 이전에 인간사를 관장하는 산신님 역시 나의 뿌리인 것이다. 사과과수원의 열매가 자신이라면 사과씨는 후손이다. 사과나무의 가지는 부모이고, 줄기와 뿌리는 조상이고, 사과밭은 산신이다. 땅은 최고신이다. 그만한 사과밭에 그만한 맛의 사과가 나오고 그만한 산신에 그만한 기질의 인물이 나온다. 또한, 모든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세상만물에는 자연의 마음(=최고신의 마음)이 깃들어져 있는 것이다.

 

태어난 곳의 산신을 본향산신이라 부르고, 현재 거주지역의 산신을 도당산신이라 부른다. 각 산신의 기질은 그 산의 형세와 같다. 산의 형세가 뾰족하고 험하면 산신의 기질도 그러하며, 형세가 낮고 온화하면 산신의 기질 역시 그러하며, 기품이나 풍체가 있어 보이면 산신의 기질 역시 그러하다. 무속인들이나 법사들이 말하는 산신은 산신이 아니며 산신행세를 하는 영가이다. 절이나 산신각 등에도 역시 산신은 없고 귀신들 뿐이다. 자신의 영성이 어느정도의 수준 이상이 되어야만 이것을 온전히 인식할 수 있으며, 그만한 잠재성을 갖고 있어야만 이 말을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신은 개개인의 사사로움을 위해 기도나 들어주는 일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한 자들의 대부분은 이기심과 탐욕과 집착에 기인한 것이다. 또, 무엇을 바라는 기도라는 것도 부족한 자들에게나 필요한 시간일뿐이다. 자신의 마음이 진정이면 그 마음을 먹는 순간 그것이 파장을 형성하여 진동되어 우주에 전달된다. 자동시스템이라는 것이며 일상에서 바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기도를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 자라면 그러한 이치를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최고신께서 '나에게 소원을 비는 것은 한두번이면 족하다' 라고 하신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것도 눈높이를 매우 낮춰서 말씀하신 것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기도라는 것을 자신의 사사로운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것들을 이해할만한 정도가 되지 못하는 자라면 억지로라도 붙잡아서 기도를 시킬 필요는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주입식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산신을 자신의 사사로운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로 여기지 않을 수 있어야 하며 그것으로 산신을 찾을 이유도 없고 찾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무 대가없이 아무 바라는 바 없이 가끔씩 산신님을 찾아 인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산신님께 예를 보이려면 산입구에서 두손모아 고개숙여 인사하거나 마음속으로 인사하면 된다. 운전중 어느 지역에 들어섰을 때는 마음속으로나마 예를 표현하면 된다.

 

산신은 그의 영역에 태어나는 인간들과 그의 영역에 생활하는 모든 인간을 관장한다. 산신님 밑에 산수비님이 계시는데 산신님을 보좌한다. 인간사에 일어나 보고될만한 일은 산신님이 천계에 보고를 하신다. 누가 진정으로 도를 닦고 있으며, 누가 어질고 착함을 노력하고 있고, 누가 진정으로 신을 찾고자 애쓰고 있고, 누가 진정으로 하늘의 뜻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등을 파악하여 천계에 낱낱이 보고되어 올라간다. 보고를 받는 정점은 최고신이다.

 

인간사를 관장하는 분이 산신님이지만 매우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면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다. 신을 모르는 이는 이러한 신계의 질서를 알지 못하니 신이 없다고 하거나 신이 인간사에 무관심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신은 인간에게 존재를 알리지 않는다. 그만한 수준에 오른 자 혹은 오를 수 있는 자에게만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해주고 그런 이들에겐 드러나지 않게 힌트나 메씨지를 주며 뒤에서 보필해주신다. 영의 간섭을 신의 존재로 여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신은 그만큼이 되지 못할 자들에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다. 수준이라고 하는 것은 깨우침의 정도와 같고 최고신의 마음에 얼마나 가까이 가 있냐와 같다. 산신을 말하면서 최고신이 언급되는 것은 역시 어쩔 수 없다. 산신의 뿌리 역시 최고신이며 세상 모든 가치는 최고신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최고신께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심어주신 그의 마음을 찾으려고 진정 애쓰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만한 축복이 내려진다. 물론 산신님이 이들을 찾아서 부른다. 물질에 탐욕하고 남을 해치는 낮은 자일수록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며 수준낮은 종교나 수련법일수록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둔다. 이들은 산신은 물론 신을 업신여기게 되어 있고 부모와 조상을 업신여기게 되어 있다. 그것 모두는 다른 마음이 아닌 같은 마음이다. 만약, 부모를 잘 모신다고 하는 이가 조상과 신을 업신여긴다면 그의 효는 거짓인 것이다. 효의 근원은 신을 향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스스로 형성한 파장이 신의 파장과 가깝지 않으면 절대 신을 찾을 수 없다. 억지로라도 무리에 섞이게 되었다 해도 신은 그런 이들에게 축복과 능력을 주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자신이 그릇이 못되어서 신의 축복과 능력을 담지 못하는 것이다. 신은 매우 가까이에 있으나 인간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뿐이다. 가능성이 있는 자는 이 글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며 진짜 신을 찾기에 유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