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똥철학

영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자신의 영성을 가늠할 수 있는 방법.

금빛오오라 2015. 2. 17. 08:51

영성(영적 수준)이란 영혼의 격이다. 인간의 됨됨이의 정도가 인성이고, 인간을 영적 존재로 봤을 때의 됨됨이의 정도가 영성이다. 인성과 수준 등을 모두 포함한 영혼의 등급이 영성인 게다. 완전한 궁극의 영적 존재가 하느님이므로 하느님의 마음에 얼마나 근접해있냐에 따라 영성이 구분되는 것이다. 신(하늘)의 마음을 짧게 표현하면 '어질고 선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마음'이다. 하느님이 우주최고의 존재이자 질서이자 자연이다. 자연적으로 난 모든 물질과 비물질에는 신과 같은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

인간의 마음을 제외하곤 세상에서 좋고 나쁜 것으로 구분되는 것은 없다. 신은 인간을 자신과 같은 독립적인 존재로 창조하였으므로 신도 인간의 마음은 어찌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이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냐에 따라 신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고 동물만도 못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영성만큼 세상의 진실을 볼 수 있고, 자신의 영성만큼 선악을 분별할 수 있고, 자신의 영성만큼 옳고그름을 분별할 수 있고, 자신의 영성만큼 수준에 오를 수 있다. 자신의 영성만큼 볼 수 있으니 낮은 자는 높은 자나 높은 것을 볼 수 없고, 높은 자는 낮은 것과 낮은 영역을 다 볼 수 있다. 자신의 영성만큼 수준에 오를 수 있으니 깨어날 수준에 오를 자는 반드시 신을 알게 되어 있고, 신을 찾게 되어 있다. 종교에서 말하는 신은 왜곡변질된 것이다. 순수신앙을 말하는 것이다.

영성은 타고난 범위 내에서 자신 스스로 형성시키는 것이다. 그 타고난 범위라는 것은 조상의 유전자에 의해 타고난 자신의 한계를 말한다. 씨는 타고나는 것이고, 그 씨를 키워 성장시키는 것은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그만한 조상에 그만한 후손이 나오는 것이며, 그것이 모여 가문의 기운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계에서 가문전체를 하나로 보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과 자신의 문제까지 조상탓하진 마라.

이 글에선 자신의 영성이 어느정도인지 스스로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다만, 그 자신 스스로 자신을 최소한 조금은 볼 줄 알아야만 한다. 영성이 낮을수록 자신을 못 보니 많이 낮은 자는 자신과 남의 영성을 파악하는 것이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궁극은 하느님이다. 하느님에 얼마나 가까이 가 있느냐 하는 게 바로 자신의 영성이다. 하느님과 같은 마음을 얼마나 갖고 있냐를 가늠해보라. 자신이 얼마나 바르고, 얼마나 어질고, 얼마나 선하고, 얼마나 희생하고, 얼마나 봉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그게 바로 자신의 영성이다. 낮은 자는 아무 가치없는 것에 목숨건다.

보편적인 개념의 선이란 것은 아이와 같은 유치한 마음이고 기본적인 것이다. 낮은 자가 낮은 선을 최고로 보게 되어 있고, 그것에 감동케 되어 있으나 신은 그러함에 감동되지 않는다. 선을 행하고자 함도 무위(無爲)가 아닌 유위(有爲)로서 부자연스런 것이다. 바른 선은 자연적으로 우러나 행하는 것이다.

선(善)보다 큰 마음이 의(義)이다. 의(義)는 옳은 일에 마음이 크게 움직이는 것이다. 더러움과 악에 분노할 수 있는 마음도 의이고, 죽어가는 자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도 의이다. 의가 없는 자는 의를 잘 보지 못한다. 자신이 의를 행한다 해도 의가 아닌 객기인 경우가 많다. 선은 아무나 행할 수 있으나 의는 아무나 행할 수 없다.

우주역사는 5787년을 한 주기로 멸망과 생성을 인간세상의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반복해왔다. 인간이 세상을 더럽히고 망쳐놓으면 하느님이 천신들을 거느려 내려오셔 세워주시는 반복이 우주역사이다. 신이 깨끗하고 높은 세상을 만들어놓으면 인간이 어김없이 망치는 게 우주역사이다. 매 주기의 종말의 시기 때마다 하늘이 인간을 심판해왔는데, 그것은 낮은 자들이 생각하는 선의 개념으론 이해할 수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신이 인간을 죽이고 벌을 주는 심판에 대해 낮은 선에 머문 자는 '왜 살생을 저지르십니까. 왜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겁니까.' 한다는 것이다. 신과 먼 영성이 낮은 자일수록 선악을 분별치 못하고 옳고그름을 분별치 못하는 등 신과 멀어 신의 뜻을 알 수 없고, 신의 하고자 함을 헤아릴 수 없고, 신과 함께 할 수 없고, 신에 가까이 갈 수 없고, 신에 반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세상을 망치는 범인인 줄 모르고 가장 높다 착각한다. 소중한 인간이 소중한 게지 모든 인간이 소중한 게 아니다. 거의 모든 인간이 더럽고 거짓스럽고 악랄하다.

자신보다 높은 것은 볼 수 없으니, 스스로 자신의 영성을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그러나, 신과 같은 마음과 반대되는 것에 대한 반감의 크기로 가늠하는 것은 어느정도 가능하다. 물론 자신을 최소한 어느정도 볼 수 있는 자에 한한다. 얼마나 바르냐 하는 것은 자신이 그릇된 것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크냐로 가늠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릇된 것에 대한 반감의 크기는 자신이 바름을 찾고 노력하는 크기와 같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대개의 인간들이 옳고그름을 잘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러하다.

어짊의 정도는 베풀지 않으려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자들에 대한 반감의 크기로 가늠하면 되고, 선(善)의 정도는 악(惡)한 자에 대한 반감의 크기로 가늠하면 되고,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의 정도는 자신만 챙기고 자신만 살려고 발버둥치는 자들에 대한 반감의 크기로 가늠하면 되고, 진실된 정도는 거짓스러운 자들에 대한 반감의 크기로 가늠하면 되고, 의(義)의 정도는 나라와 민족을 죽이려는 자들이나 팔아먹는 자들에 대한 반감의 크기로 가늠하면 된다.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영성이 높은 자일수록 마땅하지 못함에 대한 노함 역시 크다는 것이다. 낮은 자는 분노 노함 자체를 부족함으로 여기게 되어 있다. 큰 착각이다. 높은 자일수록 마땅한 노함이 크다는 게 핵심이다. 궁극의 선이신 하느님이 그러함 역시 가장 크신 분이다.

[요한계시록 16장 1절]
'또 내가(요한) 들으니 그 성전(천계의 궁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이르되, 너희 길로 가서 하나님(하느님)의 진노(크게 노함)의 병들(인간을 죽이는 여러 재앙들)을 땅에 쏟아 부으라, 하더라.'

 

더러움과 옳지 않음에 가장 크게 노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이시란 게다. 하느님은 노하지 않고 항상 온화하며 모든 인간을 아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낮은 자들의 이기심이 만든 거짓이고 착각이다. 낮은 자일수록 신과 멀어 신의 마음과 뜻을 헤아릴 수 없으며 신에 대한 관념이 이기적이고 유아적이고 자의적이다.

신에 가까이 오를 자들이 바로 12명과 12000명과 144000명으로 선별되는 것이다. 신에 가까이 올 수 있는 자는 나라와 민족과 세상을 구하는 것에 집중할 뿐 자신의 생존도 선별에도 별 관심이 없게 되어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나라와 민족을 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시기를 돌아봤을 때, 신에 가장 가까이 올랐던 자들이 바로 동학농민들이다. 그들은 내가 '깨어남이란, 악을 알고 신을 알고 시기를 알아 움직이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에 가장 가까웠던 자들이란 게다. 동학농민들은 대조선을 지키기 위해 목숨바쳐 싸운 자들이지 왕권을 약화시킨 자들이 아니다.

현 시기는 깨어나지 않으면 죽는 말세의 시기이다. 동학농민들과 같은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구하고자 했지만 구하지 못했던 것을 구해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겨 지키려고 했던 게 바로 나라와 민족이다. 한민족 학살에 맞서 목숨바쳐 대조선을 지키며 죽어갔던 동학농민들의 마음이 신의 마음 신의 뜻에 가장 가까웠던 것이란 게다. 의(義)도 충분해야 하고, 앎도 충분해야 한다. 이것은 시작이고 기본이지 다가 아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분령체이다. 영이 나의 실체이고 육은 영을 담는 껍데기이다. 껍데기라서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 영이 나의 실체라는 것이다. 낮은 자일수록 물질적이고, 높은 자일수록 영적이다. 최소한의 영성을 가진 자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식할 수 있게 되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가치를 두게 되어 있다. 육은 보이나 영은 보이지 않으니 영성이 낮을수록 영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가장 높은 존재가 신(하느님)이니 영성이 어느정도 되어야만 신이란 존재를 알 수 있지 영성이 낮으면 존재를 알 수 없고 알아볼 수 없고 찾을 수 없다. 그러면서 어느 하나 자신이 낮은 줄 아는 자 없다.

영성이 낮은 자일수록 보이지 않는 세계를 부정한다. 보이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자일수록 영성이 낮고,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자일수록 영성이 높다. 보이지 않는 것은 진실, 내면, 속, 인성, 마음, 영혼, 기(氣), 신(神) 등이고, 보이는 것은 물질, 육체, 돈, 형상, 외모, 겉, 껍데기 등이다. 우주나 외계인들은 보이는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영성이 낮은 자들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을 가치없게 여기거나 잘 인식치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한 자는 보이지 않는 세계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하느님을 알 수 없고 찾을 수 없다.

자신의 영성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해보거라.

영성이 낮을수록 비겁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의롭다.
영성이 낮을수록 정신계를 부정하게 되어 있고, 영성이 높을수록 정신계를 잘 안다.
영성이 낮을수록 가짜 신을 쫓게 되어 있고, 영성이 높을수록 진짜 신을 찾게 되어 있다.
영성이 낮을수록 보이지 않는 영역과 세계를 모르고, 영성이 높을수록 보이지 않는 영역과 세계까지 잘 안다.
영성이 낮을수록 겉(외모)을 꾸미려 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속(마음, 인성)을 가꾸려 한다.
영성이 낮을수록 알록달록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영성이 낮을수록 보석이나 장신구를 좋아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치장하는 것을 거추장스럽게 여긴다.
영성이 낮을수록 여행 관광을 좋아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그것에 관심과 가치를 두지 않는다.
영성이 낮을수록 사람을 키 외모 행색 등으로 평가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마음으로 평가한다.
영성이 낮을수록 드라마, 소설, 영화 등 허구를 찾고, 영성이 높을수록 진실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영성이 낮을수록 과학을 맹신하게 되어 있고, 영성이 높을수록 과학의 한계를 잘 인식하게 되어 있다.
영성이 낮을수록 서양문명문화를 동경하고 서양인을 높게 보며, 영성이 높을수록 서양문명문화와 서양인을 낮게 보게 된다.
영성이 낮을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게 되어 있고, 영성이 높을수록 사회적 지위가 낮아지게 되어 있다.
영성이 낮을수록 퇴폐적인 유흥을 쫓고, 영성이 높을수록 지저분한 놀이에 거부감을 갖게 되어 있다.
영성이 낮을수록 물질에 집착하며 탐욕하게 되어 있고, 영성이 높을수록 소탈하게 되어 있다.
영성이 낮을수록 남에게 더 받지(뺐지) 못한 것에 불만스러워 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남에게 더 챙겨주지 못한 것에 아쉬워 한다.
영성이 낮을수록 틀(종교, 이념, 사상, 인권, 자유, 지식 등)에 갇히기 쉽고, 영성이 높을수록 갇히지 않아 전체를 볼 수 있게 된다.

영성이 낮을수록 갇힘에서 헤어나지 못해 성장하지 못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그나마 벗어나기도 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영성이 낮을수록 언어로 표현하려 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언어표현 이전에 마음으로 소통하려 하므로 어눌하게 되기 쉽다.
영성이 낮을수록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보여주려 하고 확인하려 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정신적 교감을 더 중요히 여긴다.
영성이 낮을수록 자신을 못 보며, 영성이 높을수록 자신을 잘 본다.
영성이 낮을수록 자기성찰을 못하고 발전이 없고, 영성이 높을수록 자기성찰을 잘하며 발전하게 되어 있다.
영성이 낮을수록 배려심이 없고, 영성이 높을수록 배려심이 깊다.
영성이 낮을수록 편협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객관적이며 정확하다.
영성이 낮을수록 시야가 좁고, 영성이 높을수록 시야가 넓고 전체를 두루 잘 본다.
영성이 낮을수록 착각이 크면서 오만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착각과 오만함이 적거나 없다.
영성이 낮을수록 받고자 함을 당연시 여기며 염치가 없고, 영성이 높을수록 베품을 당연시 여기며 감사함을 안다.
영성이 낮을수록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강조하며 분별함이 없고, 영성이 높을수록 분별함이 크다.
영성이 낮을수록 분별을 못해 차이로 보려는 성향이 강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차이와 높고낮음을 잘 분별한다.
영성이 낮을수록 작은 선을 가장 높게 보고, 영성이 높을수록 큰 마음을 높게 본다.
영성이 낮을수록 선악을 분별치 못하며, 영성이 높을수록 잘 분별한다.

영성이 낮을수록 한계로 인해 아무리 많은 정보를 습득한다 해도 선악과 옳고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거나 거꾸로 보게 되어 있으며, 영성이 높을수록 정보를 습득해감에 따라 점점 더 세분화하여 잘 분별할 수 있다.
영성이 낮을수록 낮은 것과 거짓스러운 것에 잘 세뇌되고, 영성이 높을수록 낮은 것과 거짓스러운 것에 잘 세뇌되지 않는다.

영성이 낮을수록 악에 잘 속고 잘 놀아나고, 영성이 높을수록 악을 잘 알아 악의 수작을 간파할 수 있고 놀아나지 않는다.
영성이 낮을수록 아무나 알 수 없는 깊은 진실에 대한 거부감이 크고, 영성이 높을수록 깊은 진실에 대한 거부감이 작다.
영성이 낮을수록 악에 잘 놀아나고, 영성이 높을수록 악의 수작을 간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영성이 낮을수록 거짓을 진실로 악을 선으로 보고, 영성이 높을수록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영성이 낮을수록 높은 자에 대한 거부감이 크고, 영성이 높을수록 높은 자에 대한 공경심이 크다.
영성이 낮을수록 추악한 독재와 지배에 복종하고 순종적이고, 영성이 높을수록 저항하고 뒤엎는다.
영성이 낮을수록 사고와 행동이 수동적이고, 영성이 높을수록 사고와 행동이 능동적이다.
영성이 낮을수록 자신을 애써 내세우고, 영성이 높을수록 자신을 억지로 내세우진 않는다.
영성이 낮을수록 억지적으로 하려들고, 영성이 높을수록 필요한 때 외엔 억지적인 방법을 잘 사용치 않는다.
영성이 낮을수록 무리를 강압적으로 이끌려 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구성원들 스스로 할 수 있게끔 만든다.
영성이 낮을수록 남을 해치려 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남을 도우려 한다.
영성이 낮을수록 삿되며(개인적인 사사로움), 영성이 높을수록 삿됨이 없이 널리 이롭고자 애쓴다.
영성이 낮을수록 영감으로 보려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영성(인격,인성)으로 보려한다. 진정 깊은 것은 영감으론 알 수 없으며, 영감을 쫓는 이는 깊은 것을 깨우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영성이 낮을수록 육체적 관계를 쫓고, 영성이 높을수록 정신적 교감을 중시한다.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자연의 마음과 같은 것이니 자연스러운 것이다. 지극히 정상이다. 그러니 남녀간의 관심과 사랑에 대해선 죄의식이나 수치심을 가질 이유 없다. 그러나, 간음은 쾌락에 대한 집착이며, 강간은 그것에 이기심이 더해진 것이며, 동성애는 사리분별을 못하고 쾌락만을 쫓는 반자연적인 더러운 행위로서 강간범과 동성애자들은 영성이 매우 낮다.
영성이 낮을수록 둔감하거나 소심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민감함과 동시에 대범하다.
영성이 낮을수록 영험함이 부족하고, 영성이 높을수록 영험하다. 영험함이란 것은 보통 말하는 무속인들과 같은 영감과는 다른 것으로서 순수의식(=영혼 =정신)에 의한 통찰력을 말한다. 한민족을 제외한 백인흑인은 이 영험함이란 것이 없어 차원높은 정신세계로 드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떤 능력이나 감각이라는 것은 영성이 되면 자연적으로 갖춰지는 것이니, 능력이나 감각을 쫓아서는 안된다. 낮은 자일수록 능력과 감각에 혹하게 되어 있고 쫓게 되어 있다.

자신 스스로의 마음에 의해 형성시킨 가치관이 얼마나 바르냐에 따라 영성이 구분된다 할 수 있는데, 가치관은 20세 정도에서 형성되기 시작하여 30세에 기본적으로 어느정도 갖추게 되고, 40에 성장하고, 50에 깊어지고, 60에 더 깊어진다. 30 정도에서 가치관이 기본적으로 형성되고 굳어지기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쭈욱 가지 그리 바뀌지 않는다. 각자 성장의 한계도 있는데, 각자의 성장의 한계에서부터는 가치관은 물론 성장이 고정된다. 성장의 한계가 낮은 자는 나이가 들어도 어렸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으며, 성장의 한계가 큰 자는 어렸을 때와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성장의 한계가 높은 자들이 완전히 새롭게 바뀐다는 것이다.

나라별로 봤을 때, 한국인의 영성이 가장 높다. 한국인은 하느님이 3천신을 거느려 내려와 낳은 그 아들딸들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천신들의 자손들이 가장 높지 누가 가장 높겠느냐. 백인흑인은 낮은 종자이다. 백인흑인은 신의 뜻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유치하다.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하늘의 역사를 행할 수 있는 민족은 천손민족인 우리 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해라.

현 세상은 모든 게 다 거꾸로 되어 있다. 낮은 게 높은 곳에 가 있고, 낮은 자들이 모든 걸 장악하고 있고, 낮은 자들이 교육 철학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문명 종교 등을 다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하나 정상적인 게 없는 것이다. 루시퍼 렙틸리언놈들이 하느님과 단절시켜왔고, 깨어나지 못하게 하느님과 천손민족의 흔적까지 지워왔다. 그래서 질서가 없고 거꾸로 된 미친세상이 된 것이다.

모든 게 거꾸로 된 미친 현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 자들은 다 낮은 자들이라고 보면 된다. 학교공부 자체가 수준낮은 세뇌교육이니 학력이 높을수록 영성이 낮은 자이다. 순종적이어야 하고, 낮은 지식에 갇혀야만 성적이 좋게 나오게 되어 있다. '사'자 돌림도 다 낮은 자들이다. 돈을 많이 번 자들도 다 낮은 자들이다. 그러니, 성공이 성공이 아닌 것이고, 높은 게 높은 게 아닌 것이다. 성공했다고 하는 자일수록 내 말을 못 알아먹게 되어 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식하기 어렵다. 반면, 영성이 높은 자는 낮은 가치를 쫓는 것에 순종적이지 않고 복종적이지 않으며 갇혀있지 않고 열려있으므로 반드시 세뇌교육에 거부감을 갖게 되어 있고 공부를 잘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공부를 많이 했더라도 주류와 다른 길을 걷게 되어 있다.

군대에서 높은 계급일수록 영성이 낮고, 영성이 높을수록 군대에 적응조차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군대는 더럽고 폐쇄적인 조직으로서 편법과 비리와 은폐가 상식이며, 절대순종하고 절대복종하는 생각없는 살상기계를 만드는 공장이다. 더럽고 인정없고 강자에 절대복종하고 약자를 잘 부려먹는 자들이 군대체질이다. 이러한 자들이 교관이 되고 장교가 되고 높은 계급에 오르는 것이다. 바르고 깨끗한 자일수록 군대에 적응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다. 군에 적응하지 못하면 다 영성이 높은 건 아니다. 군대는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20대중반을 넘기 전에 가는 것이 낫다. 영성이 낮은 군대체질을 제외하곤 나이들수록 군대에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3년 3차 세계대전이 오니 갈려면 일찍 가고, 안 그러면 그 후로 미루는 게 낫다.

직장에서 높은 직책일수록 영성이 낮고, 영성이 높을수록 직장에 적응조차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직장시스템 자체가 순종하고 지시를 따르면서 오너의 방패가 되어 고객의 호주머니를 털어 오너의 배를 채워주는 것과 동시에 아랫사람의 노동을 착취하는 구조의 노예양성소이다. 높은 자리로 오르려면 그것을 지속적으로 오래할 수 있어야 하니, 뜻이 맞아 스스로 그러하거나 술수에 쉽게 세뇌되거나 지시를 그대로 따를 수 있는 순종적인 자여야만 가능하다. 바른 사람일수록 그것에 대해 거부감과 반감이 심하게 되어 있으니 잘리거나 승진에서 제외되게 되어 있다. 태몽 중에 용꿈을 좋은 꿈이라 하지만 사실 승진시스템인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으로서 순종적인 낮은 자들의 태몽이다. 현 세상은 모든 게 다 거꾸로 되어 있다. 낮은 강자에 잘 굴복하며 따르는 순종적인 그러한 기질일수록 승진이나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비겁한 기질을 관운이라 부르는 것이다. 관운은 의(義)와 반대되는 기운이다.

정치판에서 높은 자리일수록 영성이 낮고, 영성이 높을수록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되어 있다. 더럽고 추악하고 속임수에 능할수록 정치판에서 권력을 쟁취하기 쉽다. 뛰어난 자가 권력을 쥐는 게 아니라 권모술수에 능한 잘 속이는 자가 권력을 쥔다. 여론조사를 하는 목적은 대중들이 바라는 바대로 이행하려는 것이 아니라, 속임수에 대중들이 얼마나 잘 속고 있는지 함께 앞으로 어떻게 속여가야 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그러면서 유도질문하거나 결과까지 조작해댄다. 정치권 자체가 더러운 자들의 소굴이니 바른자는 세를 형성하는 자체가 어렵다. 바른 자는 진실되어 대중들을 속이지 못하니 영성이 낮은 대중들이 바른 자를 알아볼 리 없다. 개돼지 대중들은 항상 거짓스러운 자에게 놀아나게 되어 있고 항상 거짓스런 자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영성이 낮은 자일수록 부(富)를 가지게 되어 있다. 부라는 것은 남의 것을 많이 뺐거나 베풀지 않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게 이기심과 욕심의 크기인 줄을 모른다. 부자들이 얼마나 많은 자들의 피와 눈물을 흘리게 했겠느냐.

웃기지 않은가. 현 인간세상은 완전히 거꾸로 된 기이하고 잘못된 미친세상인 것이다. 가치기준부터 잘못되었으니 길한 사주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낮은 가치를 쫓기 유리한 흉한 사주이고, 흉한 사주라고 하는 것이 수준에 오르기 유리한 길한 사주이다. 현재 사주팔자의 가치구분기준 역시 완전히 반대이다. 그러니 명리학자들이나 관상가들의 형편없는 수준의 안목에 자신을 맡길 이유 없으며 속아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탐욕과 집착이 클수록 길한 사주 혹은 길한 운이라 하고 있다. 이게 사주팔자 명리학의 실체다.

현 세상은 낮은 자들이 대우를 받으며 높은 곳에 있고, 높은 자들이 천대받으며 밑바닥에 있다. 낮은 영성일수록 잘못된 것을 인식할 수 없고, 잘못된 것을 스스로 행하거나 따르려는 성질이 강하다. 거의 모든 자들이 스스로 그러하니 세상이 바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영성이 더 낮은 악하고 더러운 자들이 모든 사회조직에서 리더가 되어 무리를 이끌고 있으며, 그들이 그와 같은 낮은 영성인을 확대재생산하고 있으며, 낮은 영성의 세상의 틀이 무너지지 않게 곤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대조선을 붕괴시키고 학살하여 근본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린 백인 유대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사악한 루시퍼 렙틸리언놈들이 주범이며, 그것을 따르거나 문제인식을 못하는 99%의 개돼지 인간들은 공범이다.

잘못된 현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시받고 천대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자일수록 영성이 높은 자이다. 그러한 자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들을 높게 볼 이유 없고 그것을 애써 쫓을 이유 없다.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을 계속 지켜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자들이 현재는 이상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자로 매도되고 있지만, 주류가 될 날이 곧 온다. 그러한 자들이 내 말을 부분적으로라도 알아먹고 깨어나지, 배부르고 등따신 개돼지들이 어찌 알아먹을 수 있겠느냐. 2013년부터 영적으로 깨어나는 물병(보병궁)자리에 접어들었다. 정신이 깨어나지 못하는 자들은 곧 다 죽는다는 것이다.

[격암유록 성산심로]
貧者生富者死(빈자생부자사) - '가난한 자는 살고 부자는 죽는다.'
是亦眞理矣(시역진리의) - '이 역시 진리이다.'

영성이 무엇과 같은 것인지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나열해보면,
영성은 바르고 의롭고 어질고 선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마음의 정도와 같고, 신과 같은 마음에 얼마나 가까이 가 있냐 하는 정도와 같고, 신을 찾고자 하는 마음의 정도와 같고, 하느님의 뜻과 마음을 알 수 있는 정도와 같고, 자연의 이치를 파악할 수 있는 깊이와 같고, 깨우침의 정도와 같고, 악에 맞써 나라와 민족을 구하고자 하는 정도와 같고, 삿되지 않을 수 있는 정도와 같고, 인성과 같고, 배려심(매너 아님)의 정도와 같고,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통찰력)과 같고, 자신을 볼 수 있는 정도와 같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정도와 같고, 사고의 깊이와 같고, 전체를 볼 수 있는 정도와 같고, 편협하지 않은 정도와 같고, 무엇에 집착치 않을 수 있는 정도와 같고, 오만하지 않을 수 있는 정도와 같고, 마음다스림의 정도와 같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식하는 정도와 같고, 잠재성의 크기와 같고, 바른 마음의 크기와 같고, 진실된 정도와 같고, 진실을 갈구하는 마음의 정도와 같고, 의로운 정도와 같고, 악에 맞서는 저항정신의 크기와 같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정도와 같고, 세상을 깨끗하게 하려는 의지의 정도와 같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정도와 같고, 따뜻함과 동시에 냉철한 마음의 정도와도 같고, 종교 이념 사상 인권 자유 국가 지식 과학 등에 갇히지 않는 정도와 같고, 볼 수 있는 범위와 깊이의 정도와도 같고, 조직이나 무리를 잘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쉽의 정도와 같고, 그릇의 크기와 같고, 능력의 크기와 같다. 보통 알고들 있는 리더쉽은 인간을 똥개나 노예로 만들어 따르게 하거나 부려먹는 가짜 리더쉽이다. 진짜 리더쉽은 필요할 때에만 하고, 구성원들 스스로 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것이다. 리더쉽의 궁극은 우주삼라만상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리더쉽과 공의로움과 정의로움과 맑고 아름다운 마음을 배워라.

영성이 낮은 자일수록 자신을 보지 못하니 자신의 얼굴에 자신의 영성과 마음이 훤히 드러남을 몰라 얼굴을 들고 뻔뻔하게 살아간다. 세상사람들 모두가 제 잘난 맛에 살아가고 어느 하나 예외없이 자기생각이 맞다고 우겨대는 것도 각자 자신의 영성만큼까지 밖에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람이든 자신의 한계를 고집부리게 되어 있으며 그것(자신의 한계)을 평생 못 벗어나게 되어 있다. 만약, 낮은 영성의 자가 자신의 영성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다면 못살아간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다. 자신이 옳다는 착각을 에너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영성의 큰 틀은 타고나는 것이니 어릴 때부터 드러나게 되어 있고 어릴 때부터 개개인의 영성이 어느정도는 구분되어진다. 나이들수록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가 점점 명확히 드러나게 되는데, 10대가 부족함을 보이는 것은 애교이고, 20대가 부족함을 보이는 것은 봐줄만하고(가능성이 남아있고), 30이 넘어 부족함을 보이는 것은 한심하고, 40이 넘어 부족함을 보이는 것은 구제불능이다. 부족함이란 집착, 탐욕, 이기심, 편협함, 오만함, 부족한 인성, 부족한 안목, 부족한 배려심, 부족한 리더쉽, 부족한 신심 등이다.

자신의 영성만큼의 진실을 알아볼 수 있다. 영성이 낮을수록 진실을 알아볼 수 없으니 영성이 낮은 자일수록 이 글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반감이 크게 되어 있고, 가능성을 가진 자만 부분적으로 알아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글에 공감하는 정도가 자신의 영성과 같다.

하느님과 같은 마음은 노력한다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자연적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현 시기는 한민족을 집요하게 학살해온 유대사탄패거리들이 한민족 한국인 멸종대학살을 벌이기 직전의 매우 긴박한 시기이다. 내 말을 받아들이고 마음이 동해 하늘과 함께 하고자 하는 자들이 영성을 갖춘 자이고, 신에 가까이 올 수 있는 자이다.

 

※ 2021.9.9. 불필요한 내용을 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