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똥철학

'너 자신을 알라'

금빛오오라 2008. 9. 26. 14:45

2004. 8. 13. 작성.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을 많이 듣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

아무때고 자신의 합리화를 위해 또는 상대를 비난하기 위해 이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 뜻을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를 누구는 4대성인으로 꼽고 하는데, 그는 그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가 한 말 중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도 썩은 정치인들에겐 상당한 도움이 되는 말이고 그를 성인의 수준에까지 인식되게하여 그들의 야욕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부풀린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상당히 깊은 뜻이 있는 것인데 우리는 학교에서 앵무새처럼 따라만 했지 그것의 내면은 알지 못한다.

그 말을 그(소크라테스)만 했던 말이라고는 생각치 않으며, 누가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아기들은 입에 넣거나 깨물기를 좋아한다.
상대가 사람이라면 깨물어도 상대가 아파하는 줄 모르고 깨무는 것이다.
자신이 상대에게 물려 통증을 경험한 후에는 그 고통이 얼마나 되는지 알게 되며 잘 깨물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계속 반복행위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욕구표출의 무감각적인 행위에서 벗어나 의도적인 행위라 할 수 있다.

자신이 부족해 봐야 부족한 사람의 마음을 알며, 자신이 고통을 겪어봐야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자신을 볼 줄 알아야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시각이 트이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사랑할 수 있고 남을 사랑할 자격이 있다는 것 또한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될 것이다.
나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며 내가 없으면 모든 것의 가치의 기준은 삼을 수 없으며 그것은 무의미하다.
단, 수양이 되지 않으면 오만해지거나 이기주의에 빠지기 쉽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명상이나 참선, 반성을 하는 시간을 가져본 이 몇이나 될까? 이러함의 반복으로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이 트이는 것이며, 그것이 됨으로써 타인을 볼 수 있고, 어떠한 사물이나 문제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판단을 더 잘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함이 상대를 배려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상대나 사물을 더욱 정확히 볼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 비해 자신을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어떠한 판단(지식에 의한 구분은 제외)이 정확한 것인지 알지 못하며 바른 것을 바르게 보는 것조차 드물다.

자신을 보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할수록 어떠한 사물의 뒷면을 유추해 낼 수 있으며 더 정확히 더 깊게 판단가능할 것이다.
이러함의 반복에 의해 틀에 박힌 것이 아닌 남을 배려하는 의식 또한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