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똥철학

예절과 도덕

금빛오오라 2008. 9. 26. 14:49

2004. 8. 26. 작성.

 

우리는 오래전부터 '禮'에 대해 관습적으로 또는 교육에 의해 반복학습을 받아왔다.

적어도 도덕이란 것은 '예'만큼은 중요하다.

대체로 '예'는 첫인상을 '도덕'은 시간이 지남으로써 더 잘 알 수 있는 것인데...
크게 보면 한 범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세부적으론 다르다.

예를 들어 예의를 잘 갖췄지만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
도덕적이지만 예의가 없는 사람도 있다.
본인은 도덕적인 면은 지키려하고자 애쓰지만 예의는 별로 중요히 생각않는다.

크게나 작게나 누구나 이것의 비중은 다르다.

'예'라는 것은 도덕에 더욱 애쓰게하기위해 수단화한 듯하며 일정한 구속력을 부여하였다. 
'예'의 근본은 우리 사회와 조직의 잘 무너지지 않는 형틀을 유지해 주지만, 많은 부분 왜곡되어 왔다.

아래 글의 주도와 흡연예절에 대해서도 올린 바 있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는 '예'에 비중을 많이 두게되면 겉치레를 중시하고 내면을 덜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다.

대개는 나이 많은 사람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한다. 그것을 도덕적인 면과 결부시켜서는 안된다.
본인의 경우 나이 10살 더 많은 친구가 몇 있으며, 나이 20살 더 많은 대학원장님과 친구처럼 지내며 맞담배에 맞술(본인은 술못함)을 한다. 그렇다고 싸가지 없는 짓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불필요하고 부풀려진 '예'의 형식에 얽메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혼자만의 과거와 비밀도 서로에게만은 털어 놓곤 한다.

물론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한다. 또는 그러한 의식을 갖춘 사람과만 가능하다. 대개는 자신도 모르게 기존의 틀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으며 그것은 쉽지 않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중요시하는 일정부분 변질된 '예'에 의해 사회각계층 각각의 문화가 구분되어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해지게 되었다. 또 물질문화가 심해질수록 그런 '예'는 중요시되며, 도덕과는 '2마리의 토끼'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면 도덕은 후순위가 되어 줘야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모를 공경하고 나라에 충성한다." "군사부 일체" 등은 학창시절 누구나 반복적으로 많이 들어왔던 말이다.
공자는 다른 성인분들과는 달리 정치야욕이 컸으며, 자신의 적극적인 통치를 통해 바로 잡고 싶었던 듯 싶다.
이러함들은 공자가 살았던 때의 하극상적인 혼란한 시대적인 분위기와 공자 자신의 개인적인 권력욕에서 나온 면이 크다. 물론, 공자를 인격완성되신 분이며 겸손하지만 적극적인 한 성인으로 보고있다.

시간이 점점 흘러 정신적은 틀이 되어줬으나 정치인과 기득권층 등에서 이용해 점점 확대되었고 강화해갔다. 어지러운 시대, 힘에 의해 정권을 잡는 세력일수록 정통성을 갖기 위해, 경애받으며 통치를 더 원활히 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함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되었고 잘 써먹어왔다.

도올의 강의에도 볼 수 있었지만 '효'라는 것을 '충'으로 억지 연결시켜 그들이 악용해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악용이 아니라하겠지만 그들에겐 정통성이 필요했고 그러함들을 이용해왔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일본이나 서양의 경우엔 부류마다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는데, 일반 서민들의 사회적 분위기는 상당히 도덕적이다. 일본의 경우 겉으로 보이는 것을 중요시한다고 하지만 그것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지나친 배려로 상대방과 격이 생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웃집에 살면서 음식을 전해주고 하는 것은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선 상대가 부담스러워할까봐 염려하여 그런 것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것과 같이 지나친 배려는 오히려 인간성 상실을 가져올 수 있으며 현재의 일본이 그러하다. 물론, 일본의 그러한 것을 진정한 배려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지나친 배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우리 대개의 국민은 일본인의 도덕심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많이 배워야 한다!

아무튼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해왔고 입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해 온 '예'라는 것의 본질을 우리는 되찾아야만 한다.

논지에서 벗어 날 수도 있지만, 본인은 애국가가 울릴 때 가슴에 손을 얹는 것 조차 거부한다. 어렸을 적 애국가가 해질녁 5시나 6시정도 전국에 동시에 울려 퍼졌는데, 이때는 길을 가다가도 정지해 애국가가 울리는 쪽을 향해 가슴에 손을 얹고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움직이면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효를 강조하며 군사부일체라하여 필요이상의 충성(?)을 요구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곰곰히 생각해보면 한심하고 우습기도 하다.

도덕심이 바탕이된 후 서양의 합리주의와 동양의 '예'가 접목이 되어야 한다.
일본에 의해 많은 부분 우리의 정신은 무너졌고 서양의 문화가 유입되었다.
그나마 가지고 있었던 기본적 정신과 도덕심을 잃게 되었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주지 못한 채 그 하류의 문화들에 의해 흔적조차 찾기 힘들게 되었다.

시간이 더 많이 흐를수록 다시 원래로 돌아갈 것이며 점점 이것에 대한 가치는 높아질 것이며 인정받게 될 것이다. 남모르게 스스로를 지켜가는 분들은 어렵더라도 소신을 가지고 자신을 지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