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똥철학

외모지상주의와 약육강식사회에 대한 비판

금빛오오라 2008. 9. 26. 17:43

2007. 5. 28. 작성.

 

최근들어 점점 더 외모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사회적인 분위기인데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인간이기에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동물적 본능에 더 사로잡혀 가고 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이러함은 더 심해지니 어찌 인간이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가.

아주 오래전 원시사회에서 인간의 노동력은 매우 중요했다. 그땐 여자보단 남자, 남자중에서도 덩치 크고 힘이 센 사람이 대우받았을 것이다.
사냥할 때나 부족간에 전투를 할 때 그런 것이 더 유리했다고 본다.

고도의 현대문명은 인간의 힘이나 외모로 이뤄낸 것이 아니다.
돌고래나 문어, 코끼리 등도 IQ(지능지수)로만 본다면 80-90이나 된다고 한다.

인간이 신에게 받은 최고의 선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전두엽이다. 이것으로 인간은 고도의 문명과 정신세계를 이룰 수 있었다.
인간이 깊은 사고와 수준높은 의식으로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은 전두엽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동물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다.

약자를 도울 수 있는 것도 이 전두엽이 있기 때문이며, 여기에 인간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전두엽은 고차원적인 정신세계에 들어갈 수 티켓인 것이다.
동물은 몇억년이 지나도 이 전두엽을 개발할 수 없다.
진화론이 맞다면 인간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했던 생물들이 현재의 인간보다 정신적 수준이 더 높아져 있어야만 한다.('찰스다윈의 진화론은 싸구려 거짓 이론이다.' 참고 - 글 삭제했음.)
그러나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원시생물은 역시 그대로 원시적이다.

현재 사회적분위기를 봐선 전두엽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동물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힘세고 덩치크고 키크고 잘 생기고 하는 것이 인간의 내면을 성숙시키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
내면보다 외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 시기에 다수가 골이 비었으니 골이 빈 사람이 대접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힘세고 덩치크고 키크고 잘 생긴 자들을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외형에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면서 정작 중요한 것엔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현재의 관점들이 한심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문명은 고도로 발달해서 이기를 누리고 있지만, 정신과 마음의 수준은 그것에 전혀 미치지 못하며 오히려 낮아지고만 있다.

간혹 인간사회를 약육강식이라하며 힘을 가진 자들이 힘의 논리를 정당화하는데 착각하지 말아라.
인간사회는 동물의 세계처럼 강자가 약자를 잡아 먹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아니다.
억지로 그 논리를 인간세계에 적용시켜 합리화하며 어리석은 자들 위에 군림하고자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라.

인간은 이성이 있기에 강자가 약자를 도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며, 가치의 척도는 얼마나 인간적이며 내면이 충실한가에 달려 있다.
골 빈 사람이 많으므로 약자를 잡아 먹으려는 세태가 중심인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골(전두엽)이 비었으니 동물과 다를 바 업다. 그 악함은 동물보다 더 하다.

하루가 다르게 나도 모르게 변해가는 세태를 깊이 생각해 보라. 불과 몇년 전과 지금과도 큰 차이가 남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러한 것이 옳은 것이지 그것에 휩쓸려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라.
인간이기를 멀리하는 세태에 나 자신이 피해자이며 나 자신이 가해자가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속담에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이 있다.
선조들이 미화시켜 지어낸 말이 아니다.
작은 사람치고 알차지 않은 사람이 없다.
큰 사람치고 허술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큰 사람치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다'란 말과 같은 뜻이다.)

유전학적으로 인간은 키작은 것이 우성인자이며 키 큰 것이 열성인자이다.
동물은 덩치크고 힘이 센 유전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

동물의 세계에선 덩치크고 힘센 것이 살아남아 유전되어야만 종이 오래 유지될 수 있으며 이것이 우성인자라 할 수 있다.
만약 인간사회에서도 오랜 세월 그렇게 흘러간다면 열성인자만 남게 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외형에 비해 내면을 터무니없이 작은 비중으로만 두고 있음이 옳지 않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하니 어찌 인간을 인간으로 제대로 볼 수 있겠는가?
그러한 시각을 뜯어 고쳐야만 한다. 인간을 보는 척도를 동물의 세계처럼 보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자신 스스로도 다수의 어리석은 자들의 기준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외모지상주의의 사회적 분위기는 인간성회복을 더 어렵게 만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우물을 계속 파고 있는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그 우물을 파는데만 기운을 소모하고 있다.
우물에서 나와 따스한 햇별도 보고 넓은 세상도 봐야하지 않겠는가?

어느 결혼정보회사에선 평균키이상이 안되면 회원으로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TV 프로그램에서 봤다. 그런 류의 업체종사자들이나 회원들의 수준을 알 만하다.
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외모지상주의의 하나에 불과하며 이런 외모지상주의는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의 소중한 옛 것은 다 잃고 나쁜 것만 어디서 배워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안목조차 잃어가고 있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그 어느나라보다 우리나라가 더 심한 듯 하다.

외모를 더 중요시 여기는 사람일수록 그 내면은 부실하며 인간성은 결여되어 있다.
외모를 더 중요시 여기는 부류의 구체적인 습성을 보면 아래와 같다.

"장신구를 좋아한다."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
"치장하기 좋아한다."
"배우자를 볼 때 키를 최우선시 하며 스스로 키크고 덩치 큰 자에 주눅들며 키 작은 자를 우습게 본다."
"힘있는 자에 굴하며 힘없는 자를 깔아 뭉갠다."
"언행은 실하지 않으며 꾸밈과 속임수가 많다."

스스로 잘못된 기준에 얽매여 그것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자의 주변엔 속이 차있고 의식있는 자는 찾기 드물 것이다.
그 스스로 그런 인물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가까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다해도 의식의 차이로 멀어지기 마련이다.
주변에는 역시 자신과 같은 수준의 부류만 남게 될 뿐이다.
스스로 그러하지 않으니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러한데 과연 모든 인간이 다 같은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외모지상주의는 약육강식의 세태와 함께 맞물려 돌아가게 되어 있다.
외모를 내면보다 더 중시하는 자들은 약육강식의 논리로 군림하고자하는 심리의 소유자라고도 볼 수 있다.
또는 그런 부류에 휩쓸려 정신없이 시간만 보내며 가치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다.

인간성을 찾아야 한다. 인간성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찾고자 하지 않는 것 뿐이다. 인간이 되느냐 동물보다 더 못한 존재가 되느냐는 각자 본인에게 달려있다.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들에 의해 인류는 지금껏 유지해 올 수 있었다.
이러한 자들은 외모나 힘의 논리엔 가치를 두지 않는다.
현재 이들의 세력이 그렇지 않은 자들에 비하면 너무나 미약하다.
큰 정신적 변화가 있지 않는 한 현재의 흐름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외모를 중시하는 자들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볼 수 있어야 하며, 힘의 논리로 군림하고자 하는 자들은 무엇이 힘이 있는 것인지 깨달아야만 한다.

현재 우리의 전통적 정신적 가치관을 너무나 많이 잃었고, 서양의 물질문명과 외적인 면을 중시하는 의식이 더 많이 지배하고 있다.
오히려 그들보다 더 하다.
그러나, 이러함은 머지않아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우리의 고유 정신세계와 바른 인간성이 전세계적으로 대접받을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보다 값진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며 인간적인 것이다.
개개인 스스로 그것을 찾는데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어리석은 다수의 인간들이여~
별 가치없고 소모적인 그런 동물적 본능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인간적이고 고차원적으로 성숙되고자 한다면 전두엽을 개발하라.
이것이 인간성을 찾고 모두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비법임을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