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똥철학

초월수면

금빛오오라 2012. 2. 27. 19:52

오래 전 어느 날, 수면에 들기 전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바로 아침을 맞게 된다.'

불가능할 것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하면서 눈을 떴다. 바로 아침이었고 상쾌하고 몸도 가벼웠다.

이것은 수도자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치 없는 현상에 불과함을 미리 말해둔다. 이러한 것에 집중할 가치는 없다는 것이다. 본인의 흔적이니 더 잊혀지기 전에 글로 남겨두려고 하는 것 뿐이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이 아니다. 아무나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현상이 아니라 노력 과정이다. 노력이라는 것은 이것을 경험해보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마음수양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온갖 생각들로 수면에 방해 받을 때가 있다. 생각이 많을수록 의식은 깨어 있어 수면에 들기는 더 어려워진다. 수면에 들기 위해선 생각이 없는.. 생각하고 있다는 것조차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면 빠르고 깊게 수면에 들 수 있다. 피곤할 땐 바로 수면에 들 수 있는데 몸을 쉬게 하도록 하는 자연작용과 함께 의식을 덮어버릴 정도의 피곤함이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억지로 꿈을 만들어가는 자각몽의 경우 의식을 잠재워야 하는 때에 의식을 깨우게끔 하는 것이니 숙면을 취하기 어렵고 위험할 수 있다. 이것에 쏟을 에너지가 있다면 명상을 하거나 평소 마음다스림에 노력하는게 낫다.

 

잠 들기 전, 영화찍을 때 사용하는 슬레이트를 영상으로 침과 동시에 커트! 라는 소리를 마음속으로 그리며 잡생각을 지워버렸다. 다시 다른 잡생각이 조금이라도 난다면 또 다시 그렇게 해서 지워버렸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음으로 커트하면서 슬레이트를 치는 순간 잡생각이 즉시 사라지도록 마음을 썼고 그렇게 되었다. 하루일과 중 어떤 것에 대한 미련도.. 내일 일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도.. 이성에 대한 생각이 나도.. 그 외 잡다한 생각이 나도.. 이렇게 하니 모두 사라졌다. 아무 생각도 없는 상태로 전환된다. 그러곤 바로 수면에 들게 되는데, 수면에 들기 전 시간은 1분 정도에 불과했다. 평소 탐욕을 챙기거나 무엇에 집착하는 이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절제력이 필요한 것 보단 절제하려는 마음조차 필요하지 않을 만큼의 갖춤이 필요하다. 욕구와 생각을 의식적으로 바로 지울 수 있어야 하고 마음을 완전히 비울 수 있어야 한다. 이 두가지를 이룰 수 있으면 즉시 수면에 들 수 있으며 수면시간을 초월하는 경험도 해보게 된다. 수면상태로 들 때의 느낌을 좀 더 상세히 기억해 보면, 수면상태로 들어가는 바로 그 때에 입천장 뒷부분의 뇌하수체 위치 정도에서 어떤 소리가 어김없이 들렸다. 마른 침 삼킬 때 목구멍에서 '꼴깍' 하는 소리와 비슷한데, 실재 소리는 아닌 것 같고 소리로 인식하는 어떤 느낌에 더 가깝다. 이것을 느끼면 수면상태에 진입했다는 것을 잠시동안 인식할 수 있었다. 의식과 무의식이 공존해있는 매우 평온한 상태였다. 만약 수행을 하는 이가 매일 단 몇초 혹은 길어야 1분 이내에 바로 수면에 들 수 없다면 마음을 비운 것이 아니니 더 정진해야 할 것이다. 비우겠다고해서 비워지는 게 아니고 평소 마음가짐과 생활 자체가 그러해야만 한다. 어린애들이 눕자마자 바로 잠들 수 있는 것은 비어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수행의 1차관문 정도에 불과하며 기초 중에서도 기초이니 최종목표나 궁극의 수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회수나 시간을 정하지 않고 때때로 참선을 했다. 일어나기 직전 눈을 뜨지 않은 상태에서 들려오는 주변 소리의 공명의 정도, 주변의 밝기,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의 온도와 느낌 등으로 시각을 감지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시각을 정확히 맞출 수 있었다. 처음엔 10분 정도의 오차가 5분 정도로 줄어들고 이후엔 1분의 오차조차 벗어나지 않거나 정확히 맞추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매일 매일 조금씩 바뀌는 계절의 변화에 따른 일조량의 차이 조차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때가 기수련을 그만둔지 2년 정도 지난 때였지만 더 민감했고 기공은 여전히 열려있었다. 기공이 열려있으면 오전 6시 정도에서 7시 정도까지 발바닥 용천혈과 백회로 시원한 기운이 들어오게 되는데, 이 상쾌한 기분을 거의 매일 경험했다. 몸이 찬 사람은 따뜻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이전 기수련 했던 시기 중 1부인지 2부인지 과정을 마쳤던 그 날, 집에서 이불에 기대고 생각 없이 누워있는데 백회가 순간 뻥 뚫린 듯 몸 속 깊숙히까지 맑은 기가 강하게 들어오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선풍기의 바람과 같은 것이 피부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신체 내부에서도 쭉 느껴졌다. 이 통로로 뭔가가 바람을 세게 불어넣는 듯한 느낌. 백회에서부터 명치까지 폭포수의 물살이 그대로 유입되어 통과되는 상쾌한 느낌. 오래된 이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고 수행의 기초가 마련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혹시 소주천이니 대주천이니 하는 것을 찾거나 이루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자신이 왜 수련을 하고 왜 마음을 닦고 있는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라. 중요한 게 아니며 알아야 할 필요도 없으니 복잡하고 거창하게 늘여놓은 알량한 지식에 혹하지 마라. 이러한 현상에 가치를 두거나 목표로 삼는 수련법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잡술 뿐이다.)


백회로 우주의 기를 받아들인다 생각하면 1-2초만에 시원한 기가 들어왔다. 상단전을 각성시키려는 노력도 의식적으로 함께 했었는데, 자기 전 상단전에 집중했었다. 그럼, 1-2초만에 바로 상단전으로 맑은 기가 들어오고 묵직한 무엇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1분 정도 집중했었다. 상단전에 집중한다고만 해서 누구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또, 상단전에 집중하는 것은 영성을 각성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지 개발하려면 근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 있다.('아즈나 차크라(ajna chakra)를 개발하라')

상단전에 집중하기만 하면 영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어이없는 무지함은 버려야 할 것이다. 하단전과는 달리 백회나 상단전은 순수하고 바른 마음과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만이 열리게 된다. 바르려고 애쓰는 마음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바른 것이 필요하다. 편협한 시각으로 바름을 함부로 규정짓지 않아야 한다. 개발시키는 것은 특별한 수련법과 타고 나는 부분이 크다.


인간의 욕구 중 가장 이겨내기 어려운 것이 바로 수면욕이다. 이전 기수련을 할 땐, 가부좌 자세를 유지한 채 흐트러짐 없이 몇 시간동안 수면을 취한 적이 있었다. 수면욕을 이겨내기 위한 수행도 했었다. 최근 3-4년 전. 문득 수면욕을 이겨보고 싶었다. 전 날 신장에게 고했다. 내일 인월 인일 인시에 수면욕을 이기는 테스트를 받아보겠으니 오시라.

 

다음 날, 30분 전 미리 촛불 키고 물 한잔 떠놓고 명상을 했다. 참선이나 명상 때는 물론이고 기도 때도 초 안 키고 물 안 뜨고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지만 예의 차린답시고 해봤다. 신장님이 왔는지 안 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어 알 수 없지만 느낌으론 오셨다. 무속인들이 말하는 그런 신장이 아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신장은 인간의 혼령이다.
몇 시간 버텨보겠다 했는지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정한 시간을 버티려고 각오를 다졌다. 가부좌를 하고 카운트 시작했다. 말똥말똥 하던 내가 바로 잠이 들어 꼬꾸라졌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버텼다. 1분조차 버티기 어려웠고, 자다 깨다를 수십번 반복했다. 20분 넘었고 30분은 안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저히 안되서 포기했다. 예전 수면욕을 이겨내는 수행을 할 땐 훨씬 더 악조건이었음에도 나름 잘 버텼고 졸음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처참하게 KO패 당했다. 이때의 쏟아지는 졸음은 이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신장이 가소로운 듯 호탕하게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머리 숙인 채 엎드려 있다 절하고 정중히 보내드렸다. 본인의 호기심과 모험심이 만들어낸 하나의 해프닝이다.